현미경
위대한 배우 겸 감독들이 그렇듯, 배우가 연출 데뷔를 할 때는 자신을 배우로 각인시켜 준 그 지점으로 간다.그렇다면 이정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정재를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던 것은 '모래시계'였고, 정우성을 각인시킨 것은 '비트'였다. 그들은 청춘스타였다. 그리고 그들을 '청춘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공교롭게도 한쪽은 IMF였고 한쪽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시대성'이었다. 두 배우는 자신들이 출발할 지점을 '시대성'으로 맞춘다.
단순히 '시대성'으로 맞춰 자신들을 '청춘스타'로 만들어준 그 시대의 갈망을 포착하는 것이 아닌 갈망을 만들었던 시대의 근원을 역추적하는 여행인 셈이다.
그 여행은 영화는 차의 백미러에서 시작하고 차의 유리에서 종결한다.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어진 재현성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고, 텅 빈 차 밖 총성들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정재가 포착한 90년대의 갈망은 80년대의 '해방'과 '비폭력'의 순환고리를 끊어야 하는 시대적 당위성인 것이다.두 배우는 이 발견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필모그래프를 계속 중첩하며 연기를 하며, 영화 스스로 현미경이 되며 두 배우의 얼굴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배우로서의 숙명이 느껴지는 영화.
이정재의 차기작이 기다려지지만 아마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영화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