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신화의 계승

by Tony


1.

마이클 만 영화에서의 매력을 논하였을 때, 가장 많이 이야기 나오는 것은 '총격씬'이다.

그의 총격씬은 적어도 '히트'이후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해도 될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총격씬'에서 볼 수 있는 사운드나 캐릭터의 구보, 사격 자세 등 소위 말하는 액션의 리얼리즘을 논할 때의 '재현'은 TV 쇼나 CNN을 통해 생중계로 볼 수 있는 전쟁이나 폭력 등으로 인해 '사실성'이라는 것보다 무엇을 재현하는가라는 다소 '태도'의 문제로 변경된다. 마이클 만은 9.11이후 전 세계가 신냉전으로 들어갈 때, 알리를 내놓았고, 콜래트럴을 발표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할리우드에서 흑인 액션 영화의 서사는 기껏해야 리메이크작인 사무엘 잭슨의 '샤프트'라던가, '리셀 웨폰 4'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풍의 가볍고 코믹스러운 흑인이 나오는 액션 영화들이었다는 걸 상기해 본다면, 그가 만든 알리와 콜래트럴, 마이애미 바이스는 그 시대 미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인종을 초월한 캐릭터들의 품위가 존재한다. 그 품위를 만드는 핵심은 첩혈쌍웅에서의 시퀀스를 그대로 오마주한 콜래트럴의 병원 시퀀스에서 알 수 있듯 남자들의 뒷모습이 주가 된다. 결국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총격씬의 리얼리티라기 보다 폭력적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남자들의 품위에 대한 재현이다.

블랙 코드의 처참한 실패로 인해 사실상 사장당한 게 아닌가 싶었던 그가 '페라리'로 베니스에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상당히 의아했다. '포드 vs 페라리'의 제작에 참여했던 그가, 본인이 제작한 영화에서 잠깐 나온 '엔조 페라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2.


영화는 굉장히 이상하게 시작한다. 그가 경주에서 이기는 흑백 영상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흑백 시퀀스 뒤에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이어 붙인다. 기차역에서 누군가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역에 있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페라리 집에 전화할 때, 페라리는 집이 아닌 내연녀의 집을 몰래 빠져나간다. 과거의 그가 결승점에 도착하는 순간과 경쟁업체의 레이서가 도착하는 순간을 교차 편집할 때 의미심장하게도 페라리는 내연녀의 집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지 않는다. 내연녀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파란불일 때 달려야 하는 이 남자가 시동을 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은 바로 부인의 사격이다. 그가 집에 도착하는 순간 그의 부인이 '모닝커피 먹기 전에는 집에 오기로 하지 않았냐'라며 그를 향해 총을 쏜다. 그를 향한 경고성 사격이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레이싱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것이 '발포'라는 걸 상기한다면 이 총은 그의 질주를 향한 경고인 셈이다. 성당에서 신부님의 강론 시간에 펼쳐지는 '총'과 '초침','남성'의 일체화는 총이 없이도 고독한 남자의 정형을 그렸던 '알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줌인 트랙 아웃의 용법은 페라리를 탄 레이서뿐 아니라 페라리의 걷는 모습 자체에서도 나오는데, 영화는 끊임없이 그가 걷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인생'이 그의 작품인 '페라리'와 '페라리에 탄'레이서'의 동선과 같음을 영상으로 표현한다. 그의 시동은 이미 걸려있는 상태이며 오직 그가 잠시 멈추는 곳은 '피트' (레이스 도중 메인터넌스를 위해 잠시 주차하는 곳)은 '가족'이 있는 곳이다.


3.

그에게 총을 달라는 노골적인 부인의 대사 뒤에 나오는 베드신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갑자기 페라리의 왼쪽 허벅지를 보여준다. 왼쪽 허벅지에 장착된 교정기는 추후에 문제가 되는 왼쪽 바퀴와 자연스레 오버랩이 된다. 그런데 영화는 의도적으로 교정기를 보여준 뒤 바로 바가지 긁히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사정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과연 섹스를 다 했을까? 아니 정상적으로 할 수는 있을까? 가문을 이을 장자는 먼저 죽었고, 자신의 육체화는 노후화가 되어간다. 서자는 있지만 본처가 살아있으며, 그의 야망이자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피 튀기는 레이스에서 그의 노후화된 육체는 자동차 '페라리'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행해지는 일종의 저주인 셈이다.

그는 아들의 묘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한다. 그가 떠난 뒤, 그곳에 아내가 가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뿐일까? 내연녀인 리나도 그의 아들과 말을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서 모자가 대화하는 것은 오직 페라리와 그의 어머니뿐이다.

승어부의 이야기인 그리스 신화를 생각한다면, 아버지를 넘어선 유일한 사람은 오직 '페라리 '본인이며, 그 '페라리'를 통해 크로노스의 저주를 증언하고 목격한 사람은 페라리의 어머니뿐이다. 사망으로 인해 아버지를 넘는 신화에 실패한 디노와 아직 신화를 만들지 못한 나약한 아들의 역사에서 아들들의 어머니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애석하게도 페라리의 재력을 벗어날 수 없다. 페라리의 아들들은 나약하고 페라리의 아버지는 죽어있다. 크로노스의 신화는 자동차 '페라리'로 쓰였지만 제우스의 신화를 보지 못하고 마무리가 될 가능성이 커져있다. 그 신화에서 '무덤'은 자신의 자식을 볼 수 있는 곳이라기 보다 신화가 마무리될 남자의 처연한 공간인 셈이다.

그 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승어부를 계승해야 할 부자 관계일 뿐이다. 신화에 실패한 혹은 가문에 속하지 못한 후대의 어머니들은 자식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4.

신화를 계승하려는 페라리 가문의 남자들과 그런 서사들을 위태롭게 보는 여성의 공포감은 끝내 밀레 밀리아 참사로 벌어진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사람의 신체가 훼손된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의 죽음은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페라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장면은 굉장히 이상하게도 어설픈 CG로 점철되어 있다. 영화에서 총 두 번 차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마이클 만의 장기라는 '액션의 현실감'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의 어설픈 CG는 되려 의구심을 만들게 한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무려 9천만 달러다.)

여기에서의 어설픔이라는 것은 '패스트 퓨리어스'류의 황당한 CG가 아닌 사고의 현실감을 일부러 굼뜨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의 낮은 CG라는 의미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디지털 영화사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인물인 '마이클 만'이라는 전제하에 필자의 의견을 밀어붙이자면, 페라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동차 사고'가 아닌 '죽음'이기에 자동차 사고보다 시신의 훼손에 더 극적으로 힘을 실었다고 본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페라리는 로고를 가리는 린다의 엉덩이를 일부러 움직이면서까지 자동차 엠블럼에 집착을 한다. 그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페라리는 페라리가 만드는 하나의 분신이니깐. 오프닝에서 알 수 있듯, 영화가 영화 스스로 자신보다 먼저 도착한 (열차의 도착) 페라리와 하나가 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CG가 힘을 준 것은 '자동차 사고'가 아닌 '페라리'의 건재함이며 오만함의 댓가. 신의 저주인 죽음이다.

라우라 페라리가 페라리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듯, 영화도 자동차가 박살 나는 것을 실감 나게 표현하길 원치 않는다. 그건 자동차는 박살 날지언정 끊임없이 경주해야 하는 페라리의 인생이기 때문이며, 남성이 묻힌 무덤(성전)에서 미래의 후계자와 함께 남성의 신화를 연장하고픈 감독의 바람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유효한 남자들의 로망인 페라리이기에 그 바램으로 마이클 만이 포드가 아닌 페라리를 택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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