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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y Jun 12. 2022

브로커

해진을 믿으세요 


천만 원이라는 돈을 벌기 위해 아이를 파는 브로커의 설정은 묘하게도 천 원을 더 벌기 위해 송강호, 박찬욱의 수상을 만들어버린 이미경의 행보와 묘하게 겹친다. 이게 우연인지 계획적인지 모르겠으나 송강호와 박찬욱의 수상에 공통적으로 나온 ‘이미경 대표에게 감사하다’라는 말, 그리고 브로커 엔딩 크레디트에 떡하니 올라와 있는 제작 ‘이미경’이라는 타이틀은 이 영화가 스스로 ‘이미경’의 ‘수집품’이 된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가 끝나고 칸에 갔어야 했던 대한민국 제작사 대표는 차승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간단한 평을 작성한다. 

영화

곤혹스럽다. 누가 봐도 기생충의 비 오는 장면을 그대로 오마주한 티가 팍팍하는 이 장면에서 소영은 기생충과 달리 언덕 위로 올라간다. 

재미있게도 소영은 자신이 업고 온 아이를 베이비박스가 아닌 땅바닥에 놓고 온다. 이를 본 ‘수진’은 아이 엄마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베이비 박스’에 놓는다. 여기서 사소한 오해가 발생한다. 소영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지만, 상현과 동수는 아이가 베이비 박스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엄마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것은 ‘함정 수사’인가 아니면 아이를 차디찬 길바닥에 둘 수 없다는 ‘윤리’인가?


영화에서 소영은 다시 돌아오지만 아이를 파는 것에 동행하다. 아이를 땅바닥에 놓고 아이를 버렸던 행위는 용서 받을수 없고, 상현과 동수가 영상을 지우고 브로커 짓을 하는 것 또한 용서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나쁜 고객들을 보여줄 때 영화는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성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물론 이것은 되게 위험한 발상이다. 영화는 그 위험성을 관객들에게 인지 시키기 위해서 수진의 추적으로서 그들의 행동에 스토리를 배제하고 사실만을 피드백한다. 그들은 악당이라고. 

하지만 영화는 대놓고 미스 리틀 선샤인의 컨셉을 빌려오며 유사 가족의 이야기로 뻗어 나간다. 

차 안에서의 윤리성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뒷문 사이로 빠져나와 이를 추적하던 수진의 차에 도착하기도 하고, 발견하기도 한다. 서로가 생각하는 윤리로서 사실을 추적하는 수진의 차와 우성이 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품은 차의 거리의 간극을 메꿔 나간다. 영화는 이것을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다른 영화들의 장면을 대놓고 재현한다. 베이비박스를 놓고 간 ‘사실’을 지우고, 땅바닥에 놓인 아이가 왜 베이비 박스로 갔는지의 이야기와 윤리성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해진

필자에게 정말 이상하게 보였던 장면은 그들이 부산에서 강릉을 거쳐 서울, 월미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바닷가를 떠날 생각이 없다. 이는 되게 이상한 동선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바다가 품을 수 있는 대상이 중요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들 모두가 바닷가에서 놀지 않고 오직 해진만 소변만 보고 나왔다는 것 또한 괴이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애초에 바다가 이들을 품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바다에 들어갈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이 해답을 위해 잠시 우회를 하자면 서울이라는 내륙으로 가야 거래가 성사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설정인데, 그들 모두가 바다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출발을 해보자.

해진을 제외하고 소영, 상현, 동수 모두가 폭력적으로 살았다는 사실로 보자면 그들 모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다라는 곳에 들어갈 자격이 될 수가 없다. 그들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는 가족을 떠나 구성원 공동체로서의 자격이 있는 자들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감독은 해진을 제외하고 소영과 상현, 동수의 과거는 바다라는 곳에서 씻겨 내려갈 수 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바닷가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자신들을 받아줄 바다를 따라 이동한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해진이라는 순수한 아이가 해변가에 소변을 봄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거부한다. 이들의 입장을 거부하지만 해진도 결국 그들과 공범이자 상현에게 딸아이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라는 점에서 유독 이상한 존재이다. 이 지점에서 보자면 해진은 햄릿의 유령인 셈이다

이 유령은 창문을 열어버림으로써 차 안과 차 밖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이들에게 정화를 강요하지만 

이는 쉽게 씻기지 않는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그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당할 때 그 자리에 있지만 아이의 행위는 처벌이 불가능하기에 풀려난다. 진정한 유령의 탄생. 이들의 죗값은 해진이를 들뜨게 만든다. 엔딩에서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셈이다. 


거래 혹은 징벌

이 영화에서 거래는 단 한번도 성사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딱 하나의 거래만이 성사된다.

그것은 장면으로 나오지 않고 오직 수진의 나래이션만으로 알 수 있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배두나가 체포하러 올 때, 동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진에게 아이를 넘겨주었으며, 상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재들이 날 버렸다고 하며 따라오라고 한다. 모두가 소영의 거래를 알았다는 듯 말이다. 이는 소영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행동들이다. 이 영화의 유일한 거래는 형량이지 매매 시 거래가 아닌 것이다. 언뜻 보면 지저분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CCTV 영상을 삭제함으로써 사실이 왜곡이 가능하고 지저분한 결과를 이끌어내지만 영화에서의 숏은 숨겨도 스토리의 지저분한 결과를 도출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과 스토리-의도의 숭고함을 둔 감독의 의중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윤리가 정당화가 되려면 사실에 대한 죗값은 치러야 한다는 식의 교훈극은 꽤나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동안 강철중,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형사의 이미지가 반 깡패로 되어있는 한국 영화계에서 일본 형사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두 손을 모으는 기도나 ‘정숙’을 외치며 루머가 퍼지지 않게 하는 모습 또한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을 리얼리티로 받아들이는 이 한국에서 이 영화가 필자의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는 그 징벌이 당연하다고 확고히 말하며 우리 같이 지켜내자고 말하는 일본 감독의 일갈이었다. 영화는 온 힘을 다해 그 아이를 지키고 싶어 한다.  필자는 그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P.S 그럼에도 강동원과 아이유가 하는 대사는..정말... 지인들에게 필자도 눈가리는 행위를 남발하였다. 

그리고 필자는 조폭 2명을 보고 아이유가 숨었던 이유를 우성이의 친부- 사망자가 조폭이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송강호 초록물고기 난방은 좀 너무했다고 본다..그런게 한두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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