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좋아지는 나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미술 작품의 색이 뚜렷했다. 예술은 집을 꾸미기 위함이 아닌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라고 말했던 Picasso처럼 예술은 정치적 사회적인 기능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페인팅보다는 설치 작업을 선호하게 하였고 설치 작업만큼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건 육체와 호칭뿐만 아니라 정신과 취향마저 제정비 하게 만들었고 내가 선호하는 작품들은 어린아이와 함께 나눌 수 없을 만큼 징그럽거나 폭력적이거나 너무 추상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와 함께 보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들에 눈이 갔다. 그중 Georgia O'keeffe 만큼 아이들이 반응하는 작가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그녀가 그린 꽃은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시리즈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신기해하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Georgia O'Keeffe의 그림은 그들이 산책하며 꽃가게를 지나가면 보았던 꽃을 더 자세하게 보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게 만드니까 말이다.
특히나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Hibiscus with Plumeria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 만큼 아름답다. 핑크색에 환장하는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곱고 은은한 핑크를 사용하였다.
그녀는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만한 것들을 골라 그림을 그렸다. 동물의 뼈, 꽃, 산과 사막을 배경으로 한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중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건 역시 꽃 그림이었다. 작가는 꽃을 매우 크게 확대해서 그리곤 했는데 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크게 그렸다고 한다. 크게 그린만큼 대중은 작품 앞에서 꽃을 감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라 믿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녀의 예감은 적중했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마저도 그녀가 그린 꽃의 화려한 색감과 부드러운 곡선들에 푹 빠져 들었으니까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작은 무언가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recognize 즉 "알아본다"는 것은 예술 작가들이 지닌 창의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그걸 작품으로 share 즉 "나눈다"는 것은 예술 작가들의 테크닉과 미적 감각을 뽐내는 일이기도 하다. Georgia O'Keeffe는 이 모든 것을 매우 조화롭게 잘 만들어낸 작가인 것 같다. 그래서 관객은 그녀의 작품 앞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작품을 감상한다. 그녀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녀가 나누는 미적 감각 앞에서 감동하는 것, 그게 예술을 즐기는 방법 아니겠는가.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뒷마당에 핀 무궁화 꽃 때문이다. (Emmy 상을 받은 오징어게임 때문이 아니라는걸 강조하고 싶다. 아니... 아주 조금 영향을 준건 맞다)
작년에 남편은 우연히 rose of sharon을 무료로 나눠준다는 집을 알게 되었다. 정원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무작정 그 집을 찾아갔고 rose of sharon이 무궁화라는 것과 매우 낯선 백인 남성이 한국말을 한다는 점에 놀라워했다. 너무 또박또박 분명하게 그는 "안녕하세요~"를 외쳤고 자신은 통일교를 믿는 교인이라 했다. 그에게 통일교는 세계의 평화에 힘쓰는 아름다운 종교였고 무궁화는 통일교의 뿌리인 대한민국을 기억하게 하는 꽃이라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뒷마당에는 온통 무궁화 꽃만 가득했다고 한다.
그때 받아왔던 무궁화가 올해 우리집 뒷마당에 꽃을 피웠고, 나는 이 꽃이 Georgia O'Keeffe의 Hibiscus with Plumeria라는 작품을 생각나게 하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는 그런 꽃 말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뒷마당의 무궁화를 보며 깊은 신앙의 눈으로 통일교와 대한민국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열 글자에 멈춤 버튼을 누른 듯 움직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놀이는 이제 오징어 게임이라는 어마어마한 드라마로 인해 전 세계에 번졌고 내 뒷 바당에 핀 무궁화와 통일교 신도의 뒷마당에 핀 무궁화는 같지만 참 다른 기억을 불러오니...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집 뒷마당에.
Georgia O'Keeffe
Hibiscus with Plumeria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