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은 해냈다
어린 시절 예술 작품을 보면서 작가들은 결정 장애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들의 작품은 너무나 멋진 조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완벽해 보이는 작품 앞에 서면 이 위대한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그는 분명 머릿속에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그리고 칠을 할지 미리 정해놓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진행했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미대에 진학하며 작품을 만들고 공부해보니 사실 그건 정말 오해였음을 알았다.
그 어떤 작가도 한 개의 오차도 없이 머릿속 계획대로 진행하여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작품을 만들면서 그의 생각이 점점 다르게 변화하면 그것을 즉각 즉각 반영하며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과 아이디어의 변화는 그들이 매일매일 연습하고 계획하고 실패하고 다시 그리고 계획 하기를 반복하면서 겹겹이 쌓아 올린 감각과 노하우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창조적 프로세스이다. 그래서 교수님들은 그리기를 멈추지 말라고 했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가르쳤던 것 같다. 그것만이 작품을 빛나게 만들고 크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참 쉽게 말한다.
저런 거 나도 하겠다.
특히나 Piet Mondrian의 작품은 그런 말 하기 참 좋은 작품처럼 느껴진다.
줄자 줘봐.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흰색만 있으면 끝이네.
그들의 눈으로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작품 앞에서 저런 거 나도 하겠다식의 말은 참 가볍다.
생각해보면 원래 사람의 입은 참 가볍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와 사람들을 향해 참 쉽게 말한다.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것을 드러내고 잘라내고 에센스만 쥐어짜 내는 과정을 보지 못했고 완성된 작품만 보았기 때문이다. "과정"을 보았다면 "결과"를 향해 가벼운 말을 던지진 못할 것이다. "과정" 속에는 계속된 시행착오와 고침과 다시 시작하기가 반복되었을 것이니까.
Piet Mondrian의 작품을 보면 20년에 걸쳐져 나온 완성 작품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개의 색 조합이다. 나무를 그리던 그가 20년 뒤 이렇게 심플한 작품을 만들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Piet Mondrian이 그렸던 사과나무 회색 나무 풍경화는 화려한 채색에서 벗어나 점점 간단해졌고 형태는 조가 조각으로 나눴고 몇십 년이 지나 도작한 지점은 삼원색이었다.
작가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즉 Primary color 원색을 가지고만 작품을 만들었다는 건, 세상의 모든 색이 이 세 가지 조합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색과 검은색 그리고 흰색의 조합은 value 즉 어둡고 밝음을 조절해주는 기능을 갖추게 된다. 세상의 모든 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삼원색과 명도를 조절해주는 검은색과 흰색을 조합하면 그 안에 모든 그림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작품을 해석하고 바라본다면, Piet Mondrian 작품은 달라 보일 것이다. "나도 하겠다"에서 "정말 고민 많이 했겠구나"라고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르고 하는 말은 참 쉽다.
경험 없는 말은 참 가볍다.
물론 글도 참 쉽고 가벼울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써보면 그려보면 당해보면 경험해보면 안다.
쉽지 않다는 걸.
생각에서 말로 말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종이에 담고 글로 작품으로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그 작업과 과정은 매번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행하기 위해 게으름과 불안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건 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걸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더 멋진 결과를 향하고 있는 과정임을 알아준다면, 우린 서로에게 조금은 더 친절하고 조금은 더 관대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 스스로에게도 그래야 한다.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관대하게 나 스스로를 다독일 수 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