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
매주 화요일 아침은 내가 키우는 3개의 서양난 화분에 물을 주는 날이다. 녀석들을 위해 전날 바나나 껍질을 물에 담가놓는데 아침이면 그 물이 향긋한 바나나 향과 함께 노랗게 변해있다. 그 물을 서양난이 흠뻑 마실 수 있도록 40분 정도 담가놓고 건지면 초록색 뿌리가 "잘 먹었습니다" 하며 날 반긴다. 그런 다음에 녀석들을 동쪽 창가에 놔둔다. 아침 햇살 맞으며 바나나 물까지 마셨으니 녀석들은 매우 흡족하게 일주일을 그렇게 보낼 것이다.
물론 사람도 바나나맛 우유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나나맛 우유가 사람의 눈빛을 유독 빛나게 하거나 피부를 곱게 만들진 않는다. 하지만 서양난은 바나나물에 뗏깔이 변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바나나 껍질에 격하게 반응하는 서양난이라니! 뿐만 아니라 양파껍질이나 비트를 우려내서 물과 희석해서 줘도 난에게 매우 좋은 영양소를 준다고 하니 사람이 먹어도 되는 것들은 식물에게도 좋구나 싶어 사람 키우듯 애지중지 그렇게 난을 키우고 있다.
난에게는 그렇게 애지중지 영양소를 챙겨가며 물을 주고 내 아이에게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까지 골고루 들어있는 도시락을 싸주려 그렇게 노력하면서 정작 내 끼니는 대충이다. 내가 아닌 모든 것들에게 에너지를 쏟아부어 나를 돌볼 힘이 하나 없어지자 뭐라도 채워 허기를 달래 본다. 나를 대충 먹이고 덜 재우고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 주변을 돌보고 돈을 버는 일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게 당연한 거라 여겼다. 내 허리가 나가기 전까진 말이다.
Andy Warhol은 Pop art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다. 그가 만든 작품은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만들어졌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Pop art라는 장르의 리더로서 그는 그 시대 가장 핫한 아이콘, 가장 대중적인 물건을 실크 스크린으로 만들어 예술을 제품처럼 만들었다. 당시 섹스 심벌로 불리던 메릴린 먼로의 섹시한 얼굴, 단아하고 지적이며 패션센스까지 겸비한 재클린 캐네디와 중국의 거대한 리더 마오쩌둥의 얼굴 역시 Andy Warhol의 공장에서 찍어낸(?) 핫한 인물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Andy Warhol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캠벨수프이다. 거짐 60년이 지난 지금도 캠벨수프의 디자인은 윗 그림과 별반 차이가 없다. 빨간색과 흰색으로 이뤄진 캔 안에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수프가 담겨있다. 지금은 인스턴트 식품과 패스트푸드가 즐비하지만, 당시 캠벨수프는 사회가 지향하던 방향을 향해 우뚝 섰다. 간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대용식품은 여성들을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현저히 줄여줬고 사회적인 활동과 참여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토마토 수프를 만들기 위해 사야 했던 재료도 손질하고 끓이는 시간도 이 캔 하나면 다 필요 없는 것들이 되었으니 이 제품의 의미는 간편한 식사 그 이상의 것이었게다.
세상은 빨리 변해가고 그 변화에 발맞춰 제품들이 만들어지고 그 제품이 의미하는 문화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업이 Pop Art 라면 Andy Warhol은 귀신같이 그 흐름을 잘 잡아냈다. 더 이상 물 따위는 싱겁기만 하다. 달달하고 톡 쏘는 탄산의 맛은 입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니 사람들의 지갑에서 콜라 한 병 사는 것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경제 활동임을 보여준다.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고 굶주리지 않자 생겨난 제품들이다. 먹고살기 위해 꼭 필요한 무언가가 아니라 바쁜 일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간편함을 판매하는 것이다. 그것은 즉 시간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눈이 커지는 순간인가. 시간을 판매하고 구입하다니! 60년이 지난 지금도 Andy Warhol의 작품은 시간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지금 현시대에 매우 걸맞은 작품이다. 그가 지금도 살아있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라면 그는 지금 어떤 제품을 공장에서 찍어내고 있을까?
허리가 아픈지도 모르고 지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허리가 아파서 절대 엎드리지 않았다. 나는 원래 모든 사람들이 엎드리면 허리가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정상이 아님을 알았고 얼마 전에 하반신이 마비될 것 같은 통증마저 느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얼마나 나에게 인색하고 짜게 굴었는지 보살피지 않고 막 내버려 뒀는지를 알았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너무 충실하게 일만 했고 아이를 잘 키우려 이 한 몸 받쳤다가 나 스스로를 내동댕이를 친 게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프기 전에 나를 돌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가스레인지에 데워 후다닥 먹고 일터로 전진하는 일상 말고 천천히 야금야금 꼭꼭 씹으며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을 도시락으로 싼다.
그래야... 내가 더 건강하게 내 주변을 오래 건강하게 돌볼 수 있을 테니....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로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