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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Sep 21. 2023

또렷하게 기억될 날짜

그날의 기억은 우리 인생에  몇 퍼센트나 영향을 끼쳤을까

세 녀석이 서로 알고 지낸 지 이제 4년째다.  작은 기독교 사립학교에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한걸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녀석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끔찍이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핀다. 누구 한 녀석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엄마들은 하나같이 뭐가 필요한지 괜찮은지를 묻는다.  아이들은 친구 집 문 앞에 쿠키를 놔두고 가기도 하고 우편으로 손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한다.  


우연치 않게도 세 아이의 엄마는 동갑내기다.  한국, 폴란드 이민 1.5세와 이탈리아 이민 3세의 만남은 그야말로 문화의 장을 열지만 결국 우린 세기말 패션과 음악에 공감하고 9/11 테러사건을 생생히 기억하며 안 따라주는 체력과 노안에 버둥거리며 커피를 몇 잔이고 들이켜야 겨우 에너지 넘쳐나는 애들의 체력을 쫓아갈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고 애플 와치는 90 데시벨이 넘는 환경이니 청력을 보호하라는 경고를 띄운다.  그야 말고 가관이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를 떤다.  엄마들도 놀고 싶으니까!




일본계 미국인 작가인 On Kawara는 개념 예술 작가이다.  


개념 예술을 쉽게 설명하자면 작가의 생각과 아이디어 자체가 물리적 예술 작품보다 더욱 중요시 여겨진다. 만지고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예술 작품은 그저 작가의 생각, 아이디어를 서포트해주는 역할일 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작품은 다 담지 못한다. 예술 작품은 확성기로서 작가의 생각과 의견, 아이디어를 큰 울림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캬~~ 내가 썼지만 참 잘 설명했다고 잠시 우쭐했다)


On Kawara 같은 경우 날짜를 가지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국 역사에는 유독 날짜가 많이 인용되는 사건들이 많지 않은가? 12/12 사태, 8/15 광복, 3/1 독립운동 4/16 세월호처럼 그때 그 시절 그날에 일어났던 시대의 순간, 감정을 그날의 날짜가 다 포함시킨다.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못했던 그때에 흘렸던 피와 눈물 분노와 울음의 순간들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정말 날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학생들에게 개념예술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9/11/2001을  예를 들어 이야기를 꺼냈지만 반응이 너무 묘했다. 뭐라고 할까?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전설 이야기를 듣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너네 설마 9/11/2001 몰라?

절망적 이게도 클래스의 95%가 그 이후에 태어났거나 당시 2-3살이었다며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게 더 절망적이었다. 이 아이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이 어리니까 말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나이가 많은 건가? 너희들에게 그럼 나는 무슨 날짜를 줘야지 알까? 이 작품에 담겨있는 의미를...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나라에 사는 너희들에게는 기억해야 할 날짜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너희들은 평화로운 곳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 나는 너무 한국인이고 그들은 너무 미국인임을 느낀다.




옹기종기 모여 아이들의 떠드는 목소리를 뚫고 우리의 목소리로 채워보려 안간힘을 쓰던 엄마들은 내 수업 시간 경험을 가지고 깔깔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넌 그날 뭐 했니?


수업 휴식 시작이라 블랙커피 한 잔에 말보로 담배 한 개 딱 입에 물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텔레비전 앞으로 사람들이 모이더라고.  막 건물 불에 타고....  영화 보는 줄 알았잖아.


난 낮잠을 자고 있었어.  남자친구가 다급하게 전화를 해서 텔레비전 틀어보라고 소리를 질렀어.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지.


나도 그날 수업 시간이었어. 갑자기 교수님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수업을 중간에 멈추고 텔레비전을 틀었어.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나.


우린 모두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그날의 하늘을, 그날 입었던 옷, 그날 공기 중에 맡았던 가을의 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맑았던 하늘 위에 전투기가 하루종일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이곳저곳을 할퀴고 있었던 것을....


집에 돌아와 On Kawara의 작품을 보며 내게 묻는다.

나는 어떤 날을 품고 사는가.


우리가 부부가 되던 날

임신 테스트기가 두줄이던 날

타주로 이사오던 날

내 새끼가 처음 내 품에 안겼던 날

신해철이 사망한 날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

녀석이 암 수술을 했던 날

첫 강의를 했던 날


내게 굵직한 기쁨과 행복과 떨림을 한 아름 안기기도 했고 또 절망과 슬픔의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그게 모이고 모여 역사가 되고 나는 그 역사 속에 또 나만의 기억으로 나를 무장한다.

인생은 얼마나 주관적인가.


너무 기뻐서 기억하고 싶은 날들이 더 많을지, 너무 힘겨워서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날이 더 많을지 모를 인생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나를 더욱 빛나게 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허접한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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