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차오르기 전에 나와야 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뒤집혀 있을 때 나는 모든 수업을 줌으로 해야 했다. 처음 써보는 줌은 신문물이었고 미래에나 가능할법한 것들이 갑작스레 현실로 다가와 신속하게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낯설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미래 매일 죽어나가는 코로나 환자의 숫자는 내게 불안과 어지러움증과 두통을 매일 안겨주었다.
나의 학생들 역시도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환경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했다. 그 어떤 예측도 할 수 없던 그때, 주변이 하나씩 아프고 병원에 입원하고 사망하는 걸 듣고 보고 경험했던 그때 우린 모두 끝이 없는 불안한 생각과 걱정에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불안과 우울함이 가득 묻어있던 그때 나는 Edward Hopper의 그림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팬데믹을 경험해보지 않은 작가가 어떻게 그 불안한 고요함을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Edward Hopper의 작품은 그때 당시 미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지독하게 외로워 보이는 남자가 문 닫은 가게 앞에 홀로 앉아있다. 의자도 벤치도 아닌 바닥에 걸터앉은 그는 철저히 혼자다.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없어 보이는 장소에서 그는 어떤 불안을 느끼고 있는 걸까? 함께 할 친구도 가족도 없는 그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각의 늪에 빠져있는 듯 해보이는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팬데믹은 이제 엔데믹이 되었고 더 이상 누가 코로나에 걸렸는지 감기인지 구분조차 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그림의 사내가 앉아있는 가게들은 이제 일제히 문을 열고 손님 받기에 정신없을 것이다. 그동안 일하지 못했던 시간과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남자는 이제 괜찮을까?
돌아온 일상으로 그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까?
아주 오래전 일이다. 강의 끝나고 학생 한 명이 내게 상담 신청을 했다.
단 둘이 강의실에 남아 있을 때 그녀는 편지 하나를 꺼내 내게 주며 말했다. 갈겨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해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이 편지를 내게 붙인 후에 자살 시도를 했고 이 편지를 내가 받았을 때 이미 아빠는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자살이 실패로 돌아간 거예요. 이 번이 두 번째 자살 시도였어요. 앞으로 수업에 못 나올 것 같아요. 아니 학교를 못 다닐 것 같아요"
고작 22살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아버지의 목숨 무게도 더해져 작은 어깨를 짓눌렀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마. 심호흡 깊게 하고.... 끝까지 살아야 해. 버티면 살아지니까...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불안이 밀려오면 휩슬리지 말고 잘라내야 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내 안에 생각이 많아서였다. 생각이 물 흐르듯 흐르면 조각배를 타고 그 흐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듯이 내 생각과 감정에 지배되어 나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을수록 방황했고 그 방황 속에 나를 점점 갉아먹었다. 그건 우울증이었고 괴로움과 외로움을 모두 동반한 나에게 행하는 폭력이고 자해였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나를 갉아먹기 이전에 생각을 한 바가지 떠다가 정리를 하는 과정이었다. 버릴 건 버리고 간직할건 잘 놔두는 과정은 마치 비계 가득한 고기 덩어리를 가져다가 살코기만 뗘내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글은 나의 생각과 경험 감정에 대한 명상이 되었고 묵상이 되었다. 글 쓰기는 생각의 정리이자 청소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글 쓰기는 나를 매우 고요한 상태로 만들어줬다.
물론 그 학생에게 글을 쓰라고 하진 않았다. 대신 숨을 쉬라고 했다.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라고 했다. 그리고 견뎌내라고. 그녀는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었고 멀리 있던 아버지에게 갔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녀의 아버지는 괜찮은지 알 길이 없지만, 종종 생각이 나면 기도를 드린다.
꼭 숨 쉬고 있길...
최근 너무 많은 생각과 잡념과 불안에 하루를 힘겨워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갯벌에 있다고 생각해. 갯벌에서 온갖 조개들이 널려있어서 넌 그걸 줍고 있는 거야. 네 생각만큼 조개가 있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많아! 그래 열심히 주워 담아. 하지만, 물이 들어오면 빨리 거기서 나와야 해. 그때 빨리 나오지 않으면 갯벌에 빠져 죽거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잡으면 그때 물이 밀려오고 있다는 신호야. 나와야 해. 당장"
"어떻게 나와야 해?"
"종이 필요해. 알람 같은 거야. 손뼉을 치던지, 벨을 울리던지, 심호흡을 하던지, 걷던지, 물을 끓이던지.... 생각을 끊을 수 있도록 다른 행동을 해. 매번 그럴 때마다 반복해서 빠져나오는 연습을 해. 생각의 갯벌에서 나오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밖을 바라보는 여인의 그림을 보며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던 그 남자 역시도 이 여인 퍼럼 아침 햇살을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햇살이 주는 따뜻함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누가 알겠는가?
그의 고민이 해결되진 않더라도 햇빛 한 줌이 불안과 우울함이 그를 잡아먹게 놔주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