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Z Oct 27. 2023

메스암페타민과 블랙홀

Anish Kapoor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만들었다. 

내 앞에 입을 벌리고 검게 변한 이를 보여주던 그는 전형적인 메스암페타민 중독자의 구강상태였다. 그런 환자들을 보통 Meth Mouth라고 부른다. 


 메스암페타민에 중독이 되면 침샘에 영향을 끼쳐서 제대로 침이 분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균이 더욱 번식하기 좋은 상태가 되고 세균은 치아뿐만 아니라 잇몸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게다가 이 마약 안에 들어있는 화학 성분이 치아를 부식시키기도 하면서 단 음식을 당기게 하니 치아가 남아날 수가 없는 거다. 또한 중독된 사람이 구강청결에 관심을 쏟지도 않을 테니 엉망일 수밖에 없다. 


그의 치아 역시 마약으로 인해 닳아 없어지고 썩어 없어져 잇몸에 뿌리만 남겼다.  부러진 치아는 잇몸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언제 빠져도 놀랍지 않을 위태로운 상태로 겨우 매달려(?) 있었다.  제대로 음식을 씹어 삼킨 게 언제였을지 모를 그는 막대기처럼 말라 있었고 성질머리도 메말라 있었다. 


얼마뒤 그의 엄마라는 사람이 병원을 찾아왔는데 놀랍게도 아들과 똑같은 구강상태였다. 그리고 이제 갓 20살 되었을법한 그녀의 막내딸도 엄마와 오빠처럼 마약중독자의 구강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족 중에 그 누구도 성한 치아를 한 개라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셋을 쪼르륵 앉혀놓고  모든 치아를 발치해서 온 가족이 함께 틀니를 맞춰야 할판이었다. 가족끼리 옷을 맞춰 입고 신발을 맞춰 신는 건 봤어도 내 평생 틀니를 함께 맞추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이 가족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자식이 이렇게 전형적인 마약중독자의 구강상태를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건 그들이 "함께" 마약 중독자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러자 엄마를 향해선 분노가 자식들을 향해선 측은한 맘이 들었다. 대충 나이를 계산해 보니 엄마는 아들을 15살쯤 낳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가 어렸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만했다고 할만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자식들이 하나같이 이 상태인데 엄마는 내게 툭하면 전화를 걸어 묻는다. 


"(마약성) 진통제 좀 처방해 줄 수 있어요?"

"우리 애가 그때 발치하고 너무 아프다고 해서 그래요. 마약성 진통제 주면 안 아플 것 같은데 그거 가능해요?"



Anish Kapoor, Black Holes

인도계 영국인인 유명 설치 미술작가 Anish Kapoor는 그가 지닌 막대한 부와 명예를 이용해 Venta Black이라는 검은 파우더의 독점권을 사드린다. 이 파우더는 빛을 99.97% 흡수하는데 그로 인해 이 파우더가 발라진 곳은 뻥 뚫어진 것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든다. 


사실 Anish Kapoor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건 시카고 다운타운 밀레니엄 공원에 위치한 Cloud Gate이라는 작품이다. 콩처럼 생겨서 Bean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시카고의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거울처럼 투영시킴으로써 시카고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작품 속으로도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그에게 있어서 빛, 반사, 투영은 주변 사물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도 스스로를 작품을 통해 바라보게끔 만든다.  반짝이고 밝고 만질 수 있고 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거울 같은 작업을 하던 그가  Venta Black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을 땐 그 이전 작업을 모두 반대로 돌려놓는 일을 했다. 


Anish Kapoor, Cloud Gate

더 이상 빛이 없고 투영하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검은 구멍이 관객을 집어삼킬 것처럼 존재한다. 빛을 다 흡수해 버리는 이 마법 같은 재료는 자꾸만 두려움을 만든다.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구덩이 앞에서 관객은 블랙홀에서 벗어나고 싶다.  작가는 벽에도 바닥에도 이 미스터리 한 구멍들을 만들어 놓고 관객의 반응을 기다린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고 만질 수 도 없는 세계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기에 그의 작품은 두려움처럼 다가온다




틀니는 필요하고 돈은 없는데 넌 왜 틀니를 이렇게 비싸게 받냐고 성질을 내던 아들은 이제 나와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세 가족 중 가장 먼저 발치를 시작하고 틀니를 제작하기로 했지만 예약된 날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돈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아서 못 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셋 중 가장 잘 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보이는 그다. 


"내가 틀니가 있어야 좀 제대로 먹고 살도 찌우고 그러면서 직장도 구하고! 그러려고 내가 틀니를 하는 거야!"


발치하자마자 병원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피 섞인 침을 뱉는 그를 만났다.  

"담배 그렇게 피면 상처가 빨리 낫질 않아. 그럼 틀니 제작 늦춰진다"

"아는데 못 끊겠어"

그런 그의 모습이 Anish Kapoor의  블랙홀처럼 보였다.  바닥이 없고 끝이 없는 추락을 반복했을 그의 인생에 언제쯤 빛이 그를 반겨주고 구원해 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의 갯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