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e Green의 마지막 식사
1992년 10월 28일은 반 친구의 생일이었다. 생일을 축하할 겸 친구 몇 명과 하교 후에 돈가스집에 모였는데 최후의 만찬이라도 접하듯 돈가스 너머로 꽤 심오한 대화가 오고 갔다.
"오늘 밤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더라"
"그게 설마 진짜겠어? 완전 사이비야"
"근데 만약에 진짜 심판의 날이면 우린 오늘 이렇게 돈가스를 먹고 죽는 거네"
"잘 먹어라. 맛있게..."
"내일 볼 수 있음 보고 아니면... 그동안 고맙고 반가웠다"
최후의 만찬(?)을 먹은 후 집에 돌아온 그날 저녁 예수는커녕 비둘기 한 마리도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예수는 재림하지 않았고 평상시와 똑같은 해가 떴고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일상을 보냈다.
지금까지도 그날 돈가스집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어떻게 흘렀는지는 기억을 못 한다. 물론 그런 분위기까지 읽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별 생각이 없었다. 당시 나라 안팎으로 재림 예수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는 매우 고조되어 있었고 교회와 가정이 깨졌다는 건 한참 뒤에나 알게 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예수의 재림을 계산할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어떻게 10월 28일이라는 날짜를 콕 집어 그날이 심판의 날이었다고 할 수 있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무슨 달력으로 계산했을까?
음력 양력 윤달 보름달?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돈가스가 기억에 남는 건 생의 마지막 음식이라는 의미를 매우 어린 나이에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죽게(?) 생긴 지금 나의 마지막 끼니가 돈가스였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돈가스는 맛있으니까.
얼마 살지도 않은 인생을 돌아보며 서로에게 나름의 축복과 인사를 했던 것도 마지막의 순간 어린 우리가 할 수 있던 꽤 적절한 말과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예수님도 오시지 않았기에 40이 훌쩍 넘은 지금 피식 웃으면서 쓸 수 있는 글의 재료가 되었다.
Julie Green은 로컬신문을 읽다가 신문 코너에 쓰인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 메뉴와 사형소식을 접했다.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갔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마지막 생을 사형으로 마감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없이 그저 먹었던 음식의 종류와 사형 날짜만 적힌 기사는 작가에게 묘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런 종류의 기사를 수집하고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라는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얀 포슬린 접시에 푸른색의 유약으로 그려 넣은 음식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고 그들이 주문한 음식의 양 역시도 천차만별이었다.
어차피 내일이 없는 인생 배 터지게 먹고 죽어야겠다는 이들은 작가가 다 그려 넣을 수 없을 만큼의 양을 주문했고 어떤 이들은 사형확정이 취소되었음 하는 마음에 아무 음식도 주문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삶은 계란과 커피처럼 너무 간단하다 못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음식을 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죄를 가지고 묻기보다는 인간으로서 맞이하는 마지막 식사가 의미하는 것에 중점을 둔 작가는 묻는다.
생의 마지막 날 당신은 무엇으로 당신의 배를 채우렵니까? 그 음식은 당신에 대해 무얼 말해주나요?
Julie Green의 작품을 직접 봤을 때 전해지는 짠함 같은 게 있었다.
그들은 정말 배부르게 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음식을 다 먹었다면 소화는 잘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누구를 가장 그리워했을까?
그들은 무엇이 가장 후회스러웠을까?
그릇에 채워진 음식 그림만으로도 작가는 충분히 관객들에게 아련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다.
Julie Green의 작품을 이야기하다가 나의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네는 마지막 날 무슨 음식을 먹고 싶니?
치킨이요!
타코!
파스타!
그러다 누군가가 말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요"
그러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최고지!
그럼 교수님은요? 뭐 먹을 거죠?
나?
말보로 라이트랑 정말 죽여주는 블랙커피!
애들은 깔깔 웃고 나 역시도 웃는다.
죽게 생겼는데 건강이 문제겠어? 밥이 넘어가겠니?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게 사람의 인생이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보내며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인생을 살다가 막상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죽음의 소식을 접하면 일상에 알람이 울린다.
너무 늦게 삶의 소중함을 깨닫지 말라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매번 느끼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죽여주는 커피를 지금 마셔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지금 말해줘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중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오늘 저녁 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예뻐 죽겠는 내 딸과 무슨 저녁을 맛있게 먹을지 고민해 본다. 무얼 먹든 당신들과 먹는 게 내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버티면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