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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Nov 17. 2023

당신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내 점수는 내가 준다. 

오래전 일이다. 수영을 유난히 좋아했던 녀석은 툭하면 수영장에 놀러 가자고 했고 나는 흔쾌히 녀석을 데리고 동네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에 들어서면 목소리가 한 톤 두 톤 높아지던 녀석은 정말 온 맘과 정성을 다해 물놀이를 즐겼다. 아무리 집에 가자고 해도 조금만 더를 외쳤고 겨우 달래서 차에 태우면 배 고프다고 징징 거렸다.   

물 밖에 나오니 그제야 배고픔을 느꼈던 녀석은 간식을 입에 물고 야금야금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늘 그랬듯이 간식을 먹고 오물오물거리다 내게 물었다. 

"엄마, 왜 남자들은 찌찌 보여주고 여자들은 안되는 거야?"


아이의 질문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 어린 녀석이 관찰한 수영장의 모습은 찌찌를 보여주는 사람과 찌찌를 가린 사람들로 나뉘었고  그들은 남자와 여자의 다른 모습임을 감지했나 보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너도 알다시피 남자랑 여자의 가슴은 생김새가 매우 달라. 여자는 아이를 낳고 모유를 먹일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모양과 기능이 다르거든. 그래서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가릴 수 있는 수영복을 입는 거야."


나의 대답이 아이의 궁금증을 풀어주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는지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성에 관해서 알아야 할 시기가 온다면 나는 여성의 가슴과 섹스 그리고 사회에서 타부가 되는 노브라와 유두노출에 대해서 논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Botticelli의 비너스는 여신이다. 긴 머리 휘날리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났다. 긴 목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건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기 때문이다. 비너스는 여성의 주요 부분을 살짝 가린 채 멍하니 바라본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아름다움은 그녀의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며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그 어떤 관심도 없어 보인다.  


내 외모가 왜 당신에게 즐거움이 되는가? 

당신과 내가 무슨 관계이길래?


인류는 인간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찬양했다.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진 여자와 남자의 육체는 몸 자체가 지니고 있는 고운 선과 부드러움을 작품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감탄하게끔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가 나타내는 몸의 상징은 사뭇 다르다. 남자는 건장하고 씩씩하고 용맹스러운 근육질의 몸이라면, 예술이 그리는 여자의 몸은 섹스 그 자체다. 비너스가 아무리 여신이라 할지라도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려진 이상, 그녀는 성적인 존재일 뿐이다. 


Barbara Kruger, Your body is a battleground.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이미지가 어린아이 때부터 차곡차곡 채워진다고 느꼈던 지점은 아이의 옷을 쇼핑할 때다. 여자 아이의 반바지는 남자아이들 것 보다 늘 한 뼘 더 짧고, 팔과 어깨 배꼽이 다 보이는 셔츠는 아이들에게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 같다. 게다가 비키니도 아닌 원피스 수영복에 애매하게 뚫린 구멍은 아이의 몸매도 용감하게 드러내라고 한다.  매우 짧은 문장으로 송곳처럼 날카로운 사회적 문제와 현상을 집어내는 작가로 유명한 Barbara Kruger의 작품 Your body is a battleground처럼, 너무 어린 나이부터 육체는 전쟁터가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네 몸을 전쟁터로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관심받고 싶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은 그 마음이 이끄는 선택은 정신과 육체를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누군가가 나의 아름다움을 매우 허접하고 저질스럽게 다룰 수 도 있다고 말이다.  매우 추하고 더럽게 말이다. 


그래서 매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를 위한 선택인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선택인가? 


한국은 외모에 매우 민감한 사회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특히나 연세가 지긋하진 분들은 외모에 대해 서슴없이 지적을 해도 그게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65세 정도의 어르신이 우리 스태프 한 명에게 칭찬이랍시고 몸매가 좋다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말도 안 되는 영어로 했다. 

그는 그 말 한마디를 매우 큰 칭찬으로 여겼고 스태프는 성희롱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중간에서 진땀을 흘렸다.  

당연히 백 프로 성희롱이 맞다. 


내 몸매가 예쁘고 얼굴이 예쁜 게 왜 너한테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  


Botticelli의 비너스의 시선이 맘에 드는 건, 그 이유에서다. 


나의 존재는 아름다움이지만, 그게 당신에게 평가받아야 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내가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내가 가장 먼저 알아주자. 

그럼...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으로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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