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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Dec 09. 2023

대장내시경과 다니엘 햄리

40대의 문턱을 넘어선 나는 없을 것 있고 있어야 할 건 없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런 건가?  건강하게 오래 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는 정신 차리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절실함 같은 게 생긴다. 엄마가 되어 느끼는 책임감은 내 몸 하나만 잘 건사해서 어떻게든 살아보자를 넘어서는 더 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5년에 한 번 하라던 대장내시경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매해 한국 방문할 때마다 했던 종합검진이지만 한국에 못 나간 지 4년이 넘어간다. 가족력을 무시할 수 없는 암의 역사는 내 윗 세대 어른 몇몇 분에게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선사했기에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하고 있다. 난 엄마니까. 건강하게 잘 살아야 내 새끼를 키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미국에서 처음 하는 대장내시경이다. 아직 나이가 대장내시경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나이는 아니지만 어마 무시한 가족력과 이전에 발견된 폴립은 자연스럽게 대장내시경을 꼭 해야 하는 환자로 취급되어 의사를 만나게 해 줬다. 미국 병원은 참 예약하고 의사를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 역시 9월에 예약을 해서 12월에 만났으니 석 달이 걸렸다.  하지만, 담당 의사와 만나서 꽤 오랜 시간을 1:1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또 나름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 대장내시경을 담당할 의사와 상담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병원 로비에서 기다렸고 내 순서가 되었다.  작은 진료실에 앉아 기다리는데 다니엘 헨리 정도는 아니지만 다니엘 햄리 정도 되는 준수한 의사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분명 라스트 네임이 동양인의 이름이 아니었는데 백인의 허우대에 동양인의 찐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는 내게 한국 단어를 몇 개 툭툭 던지며 자신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물론 그의 한국어에는 매우 짙은 미국인의 발음이었지만 말이다.  비록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정신줄 놓은 체 민망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상황이겠지만 그의 친절함에 좋은 의사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대장내시경을 준비하는 과정이 고된 건 알았지만, 지난번 한국에서 먹었던 약이랑은 차원이 다른 정말 더럽게 맛이 없는 약이었다. 분명 제약회사는 일부로 이따위 맛을 고집하며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진저리가 나다 못해 매스꺼움마저 느꼈지만 난 들이키고 또 들이켰다. 갑작스레 들어오는 더럽게 맛없는 아주 차가운 물약에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추위를 느꼈다. 그리고... 더럽게 맛은 없지만 효과 하나는 끝내주는 약으로 인해 대장을 비우는 일에 성공을 했다. 


다음날 침대에 누운 체 검사실로 옮겨진 나는 다니엘 햄리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프로포폴이 슬금슬금 몸에 들어오는 걸 느끼며 잠이 들었다.  "I feel something coming"이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뜨자 회복실이었다.  벌써 다 끝난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물론 웃기는 일은 없었다.  그냥 웃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이래서 프로포폴을 하는구나....  슬슬 정신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는데 다니엘 햄리 선생님이 왔다. 또 폴립이 있었고 잘라내서 조직검사 보냈으니 곧 결과받을 거라고 한다.  모양은 나쁘지 않았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는 꼭 3-5년 검사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요 우리 5년 뒤에 만나요. 


슬슬 정신이 맑아지자 휠체어가 왔다.  대장내시경 검사하면 무조건 휠체어로 입구까지 가야 한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회복실 커튼을 걷자 바로 앞 회복실에 노인 한 분이 침대에 앉아 있는데 이 분도 아직 마취에서 덜 깨어났는지 여기가 어디냐 너는 누구냐 내가 왜 여기 있냐라는 말을 반복했고 간호사는 매우 친절하게 곧 정신이 들 거라는 말을 반복한다. 휠체어를 타고 나가는 나를 보자 그는 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마치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큰 이상은 없었지만, 꾸준히 내 몸은 없어도 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치아도 발치하고 임플란트 수술까지 했으니 정말 없어도 되는 건 있고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내가 돼버렸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 건가? 


20대 때는 건강하고 예뻤지만 그런 건 하나도 감사하지도 않은 채 방황만 했다. 30이 되면 좀 덜 방황할까 싶었는데 더 지랄 맞게 방황을 했다. 40이 되니 마음은 평안한데 내 몸이 저항을 한다. 참 인생은 편할 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친절하게 관대하게 섬세하게 요리조리 챙기고 있다. 점점 없어야 되는 게 생기고 있어야 하는 게 없어지고 닳게 되어도 평생 나와 함께할 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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