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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Dec 03. 2023

Estate Sale과 외로움 냄새

사람들은 살기 위해 버리기도 하고 채우기도 한다.  

미국에는 Estate Sale이라는 것이 있다.  집주인이 사망했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집을 개방하는 일을 칭한다. 집 앞이나 골목에 Estate Sale 싸인을 붙이이거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하여 장소와 시간을 알린다.  운전하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싸인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estate sale만 찾아 쇼핑을 하기도 하는데 좋은 중고 물건을 매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구매는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른 후에 바로 차에 싣고 가져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집주인이 사망한 경우에는 유족이 정리를 하지만 때로는 기관에 맡겨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남편과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던 중 estate sale 싸인을 봤고 평소 중고물건 사고파는 일에 매우 열정적인 남편은 얼른 핸들을 꺾었다. 종종 지나가던 집이었다. 큰 길가 앞에 위치한 집은 늘 무언가로 조잡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다.  꽃과 인형 형형색색의 물건들로 집 앞을 장식해서 늘 튀는 집이었기에 더 궁금한 것도 있었다.



어두컴컴한 집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과 그 물건을 구경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집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낯설움은 나를 짓눌렀고 모든 공간에는 인형이 있었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인형을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형이 모든 공간에 가득했다. 심지어 화장실 샤워부스에도 인형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인형을 모았던 사람인가?


부엌으로 향하자 이번에는 찻잔세트와 그릇 세트가 가득 쌓여 있었다. 100명이 동시에 먹어도 될 만큼의 접시와 컵과 찻잔은 몇 개의 테이블에 가득 쌓여 있었고 박스에서 꺼낸 적도 없는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새것들도 가득했다.


그릇도 모았던 사람인가?


방으로 향하자 이번에는 가발과 옷과 신발과 가방으로 가득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걸 구했나 싶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너무 화려했고 컬러풀했고 쓸모라곤 한 개도 없는 물건들이 옷장뿐만 아니라 바닥에 의자 위에 침대 위에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가 가득 찬 바구니가 적어도 10개는 된듯했다.


옷과 신발과 가방과 가발과 액세서리도 열심히 모았던 사람인가 보다.


2층으로 올라서자 60년은 되었을법한 장난감과 크리스마스 장식용품과 빈티지 가구, 형형색색의 옷과 퀼트 이불, 코바늘도 만든 담요와 또 다른 바구니에 담긴 액세서리가 더 있었다. 6개의 크고 작은 방에는 인형들과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단 몇 센티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빈티지 장난감 뮤지엄에 간듯한 느낌이었는데 재밌지가 않았다.

 

Estate sale을 맡은 회사 직원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원래는 일층 집이었으나 그녀의 인형들을 더 이상 놓을 곳이 없어서 이층으로 집을 올렸다더라...

남편과 이혼 후에 가족 없이 혼자 살았는데 합의금을 많이 받아서 이렇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더라...

할리우드 배우가 되고 싶어서 요란한 복장을 좋아했다더라...

주얼리가 너무 많아서 정리하는데 며칠이 걸렸으나 지금도 정리 중이라는 얘기...

그리고 그녀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회사직원들의 대화는 사망한 집주인에 대해 막연한 동정심 같은 걸 갖게 했다.

남편과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대화를 이어갔다.

인형은 언제부터 모았을까?

너무 외로웠을 것 같아.

연휴에 찾아오는 사람은 있었을까?

저 큰 거울 앞에서 화려하게 치장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까?

인형이 가족이었을지도 몰라.

외로움에 숨이 막혔을 것 같아.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린 영혼의 무거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놀라움과 신기함이 가득했으나 점점 서글프고 외로운 감정들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인형들과 먼지가 가득한 물건들 그리고 그 어두컴컴한 집에 쩌든 외로움의 냄새가 나와 남편의 영혼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 집을 나서자 시원한 가을 공기와 밝은 햇빛이 무거운 영혼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남편과 나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고 미니멀리즘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미니멀리즘의 시작이 일본이라 한다. 지진이 생활인 이 나라에서 많은 물건은 오히려 지진 발생 시에 더 큰 재난을 갖고 올 수 있기에 가장 단출하고 필요한 것들로 채우는 것으로 시작된 문화적 흐름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의 시작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수단 었다. 그렇다면 이 할머니는 살기 위해 그 많은 물건들을 모은 게 아닐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혹은 공허한 속내를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맡았던 지독한 외로움의 냄새를 기억한다.  

그리고 문득문득 나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나에 관해서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난 무엇을 컬렉트 하고 있으며, 물건이 아닐지라도 무엇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고 모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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