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꽃도 핀다.
6개월 시한부 환자의 딸은 아버지의 소개를 받아 우리 병원을 찾았다. 아버지와 묘하게 닮은 것 같으면서도 안 닮은 것 같은 그녀는 아버지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아무래도 항암치료를 버티기에는 그의 체력이 너무 약해진 것 같다며 어지러움과 매스꺼움이 너무 심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남은 6개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싶다면서 말이다.
사실 그는 지난주에도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 오질 못했다.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치아를 원했는데 이제는 치아가 있어도 삼키질 못할 만큼 약한 체력이 된 것 같다.
그의 딸은 아무래도 아버지가 치과 치료도 포기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팠다. 모든 걸 다 포기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오늘 그에게 전화를 했다.
기운 없는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린다.
"아픈 건 좀 괜찮나요?"
갈라진 목소리를 다듬으며 전화를 받은 그는 지난 금요일보단 좀 낫다고 한다.
나는 그가 치과 치료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음 하는 마음이 컸다. 제대로 씹어 먹을 치아라도 만들어서 마지막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을 갖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개 없는 앞니 대신 웃을 때만큼은 치아가 가지런히 예쁘게 보여서 딸들과 사진을 남길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병원에 와서 나머지 치료받으실래요?"
"... 좀 많이 체력이 힘드네요"
"어제보단 오늘이 좀 낫나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내일 더 괜찮을 거예요"
"그렀으면 좋겠어요"
그는 나와 통화를 하며 다음 예약을 다시 잡았고 난 기뻤다.
그가 치료를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해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치과 치료라도 받겠다고 한 결정은 아주 작은 삶의 의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응원하고 싶었다.
애정으로 키우는 서양난에 꽃봉오리가 제법 통통하게 맺혔다. 내가 바쁘게 일하는 순간에도, 잠을 잘 때도, 산책을 하고 강의를 하고 가정을 돌보고 육아를 하며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갈 때 나의 서양난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게으름 부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성장하고 성장하며 꽃봉오리까지 만들어 냈다.
생명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건 성장과 변화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이 노쇠하고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다고 한들 생각과 의지와 소망과 사랑이 멈추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그도 병원에 오겠다고 결정을 했을 것이다. 살아있는데 멈출 순 없으니까.
삶은 그런 거다.
멈출 수 없는 것... 그러면서 종종 삶의 구석구석에서 꽃도 피고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