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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Dec 29. 2023

자연스럽게 위로가 되는 지점

의도치 아니하고 우연치 아니하여도

이른 아침 다운타운으로 향하던 기차 안은 조용했다. 모두들 춥고 어두운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준비를 했을 것이다. 따뜻한 히터가 나오는 기차 안에 몸을 싣고 낯선 누군가의 옆에 앉는다. 멀뚱멀뚱 멍 때리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전화기를 붙잡고 있기엔 눈이 곤하다. 차라리 잠시라도 눈을 붙이는 게 낫다 싶어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귤을 까기 시작했나 보다. 상큼한 귤냄새가 기차 안에 퍼졌고 코 끝에 상큼한 시트러스 향기가 닿았다. 그 향이 내 기분을 좋게 해 줬다. 귤이 이렇게 향이 좋았나?


누군가의 귤이 내 하루에 이런 영향을 끼친다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그저 귤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그 사람의 귤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기분 좋게 말이다.


우연히 혹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이나 글이 전혀 의도하지 않고 우연치 않은 사람들에게 닿을 때가 있다. 나처럼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만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특히 그런 기회가 많다.


올해도 그런 만남을 우연히 의도치 않게  가졌다.

숙제 에세이를 쓰던 나의 학생은 에세이 질문 때문에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고 숙제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며 내게 고맙다고 하였다. 100명에게 준 똑같은 에세이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돌아볼 만큼의 질문이 되어 돌아갔다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게 기쁨이 되어 돌아왔다.


누군가는 내 수업가운데 여러 작가들과 작품을 알아가며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일도 이겨낼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걸 의도하며 강의를 한 건 아니었지만 또 기쁨이 되어 돌아왔다.


보험회사를 상대로 클레임을 진행하며 더 이상 환자에게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실은 이번 달 페이를 좀 늦춰줄 수 있냐고 물으려 했다면서 말이다. 난 내 일을 했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그녀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돈을 아끼게 해 준 샘이 되었다.


의도치 않고 우연의 한가운데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던 순간들이 모이면 삶이 꽤 괜찮아 보인다. 마치 내가 상큼한 귤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나도 상대도 의도하지 않은 어떠한 행동과 결정에서 얼굴을 찌푸리는 일 말고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일이 잦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순간과 지점들이 있어서 지인이던 타인이던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일상에서 그게 또 얼마나 기분 좋은 경험이 될까? 그런 경험들이 계속 쌓아 쌓아 일상의 일부가 된다면 나와 타인은 얼마나 또 자상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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