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따뜻한 코코아 같았습니다.
나는 과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미국 와서 경험했던 고생스럽고 맘 상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종종 엄마가 그런 얘기를 꺼내면 너무 싫다. 내가 진짜 어떤 기분으로 어떤 마음으로 버텼는지 알 수 없으면서 그저 자식이 겪은 일이 속상하다는 이유로 옛날 일을 꺼내면 난 질색을 한다.
나의 미국 생활은 "아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따위로 퉁쳐질 만한 어려움이 아니었다. 과거에서 나의 삶은 사는 게 아니라 버텨야 하는 것이었다. 삶은 없었고 오직 견디는 것과 버티는 것만 있었다. 내가 옛날 얘기를 안 하는 건 아직도 내겐 상처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더더욱 나는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게 싫어졌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내 아이를 양육하면서 어렸던 나를 함부로 대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 어른이라는 주변 인간들은 매우 별로였다. 인간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별로인 사람들이었다.
내가 어디 가서 교수 소리라도 들으며 사니까 이제야 참 고생 많이 했는데 잘 컸다는 소리나 하는 그들을 보면 기가 막히다. 그 고생의 8할은 당신들이었는데 말이지...
내 과거가 그랬다. 별로였다.
그런데 그런 내 인생에 따뜻한 코코아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Al 아저씨였다. 그는 정말 나의 아저씨였다. 영어가 힘들고 한국 사람들에게 지치고 외로움이 목구멍으로 나올 때면 담배 연기로 짓눌렀던 그 시절에 나는 호스트 패밀리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아저씨는 다정함과 사랑으로만 만들어진 사람 같았다.
추운 겨울이면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히터를 틀어놔 줬다. 영하에 눈이 가득한 날씨에도 내 차는 늘 따뜻했고 눈은 다 치워져 있었다. 아줌마가 일을 가는 날이면 저녁을 챙겨주고 설거지를 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우린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이 된 나한테 점심을 싸주던 그는 내게 매번 똑같이 다정했다.
결혼식장에 나의 손을 잡고 들어가 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는 너무 기뻐했다.
"나에겐 한국 아버지도 있고 미국 아버지도 있으니까 당연히 두 손 다 잡고 가야죠!"
그는 나와 통화를 할 때마다 나를 볼 때마다 너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줌마가 림프암을 앓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내 마음은 무너졌다.
아저씨를 찾아갔고 오랜만에 날 본 그는 내가 누군지 몰랐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사진을 보여줘도 나를 몰라봤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나는 화장실에서 통곡을 했다. 정말 목놓아 울었다. 나를 몰라보는 아저씨를 만나는 게 많이 힘들어졌고 나는 아줌마만 따로 만나 식사를 하곤 했다. 날 못 알아보는 그를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일부로 좀 더 피했다. 난 좋은 기억만 담고 싶었으니까.
지난주에 나의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랜만에 아저씨 아들과 통화를 하며 우리 둘은 울었다. 날 기억하지 못하는 아저씨를 보는 게 힘들어서 연락을 못하고 살았다는 말에 아저씨 아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천국에서 예수님 옆에 앉아서 지금 웃고 계실 거야. 미안한 마음 갖지 마. 이해하실 테니까!"
나는 내일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