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정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Z Feb 09. 2024

To Do List vs. To Be List

잘 죽기 위해서 잘 산다.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한편을 내준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뚜껑이 열린 관에는 창백하다 못해 하얀 분칠이 되어있는 낯선 남자가 입을 벌린체 누워 있었다. 저렇게 말랐었나? 싶을 정도로 야위어 보였던 그는 내가 아는 Al 아저씨가 아니었다.


엄숙하지만 웃음과 울음이 순간순간 터져 나올 수 있는 미국 장례식은 한국의 장례식과 사뭇 다르다. 물론 갑작스러운 사고사도 젊은 나이의 안타까운 죽음도 아니었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저 그에 대한 좋은 추억들을 나눈다. 너무 오랜만에 나타난 나를 향해 반가워하던 나의 미국인 가족들 앞에서 나는 나의 추억을 나눈다.


점심 도시락 가방에 펩시캔 대신 똑같은 색의 맥주캔을 넣어 학교를 뒤집어 놨던 이야기.

한국에 다녀온 나를 그다음 날 영화관에 끌고 가 식스센스를 봤던 이야기.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었다는 반전에 충격을 받아 몇 날 며칠 날 잡고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던 이야기.

매번 차 시동을 걸어놔 주고 눈을 치워줬던 다정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의 다정함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입으로도 전해졌다.


아이에게 먹을게 필요하다며 5불만 줄 수 있겠냐며 구걸하던 여자에게 20불을 친히 주며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해줄 수 있던 사람이었고 하키와 미식축구 경기가 하는 날이면 자리에 제대로 앉아서 게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열성 팬이었던 이야기... 봉사활동 상을 수상하게 되자 오히려 당연한 일에 왜 그런 상을 주냐며 의아해했다는 이야기.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Al은 다정하고 선하고 착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7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참석했던 장례식에 내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를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 왜 이 장례식이 엄마한테 중요했는지 알 것 같아"


호텔로 돌아와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이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집중했지 그가 무얼 이뤘는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훤칠하고 잘생겼었는지

그가 회사에서 얼마나 큰 능력으로 승진을 했었고 연봉은 얼마나 받았었는지

어떤 차를 몰았고 어떤 의리의리한 집에서 살았으며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그 누구도 그가 살면서 이룬 업적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그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사랑이 많았고 어떻게 베풀었는지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나의 장례식에는 나의 어떤 모습을 가지고 이야기할까?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엄마를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올라?

날 안아주고 머리 쓰다듬어 주는 모습.

너에게 엄마는 사랑이구나 싶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인생의 리스트는 To Do List 가 아니라 To Be List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나의 장례식에는 Al 아저씨의 장례식처럼 웃음이 있긴 바란다. 울음보단 웃음이 안타까움 보다는 자랑스러움이 슬픔보단 즐거움이 더 많은 추억으로 나눠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저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