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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Feb 04. 2024

삶과 죽음 사이의 반짝이는 커튼

이성과 감성, 사이 신음과 인정 사이

남편은 매번 죽음을 앞둔 이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이성의 끈을 놓고 숨만 쉬고 있고 어떤 이는 불안으로 눈물만 흘리기도 한다.  어떤 이는 자신이 좋아했던 찬양을 함께 불러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해달라고 한다.  어떤 이는 분노가 태도가 되어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남편과의 만남을 거부한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았듯이 죽음도 각각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남편은 말했다.  삶을 잘 살아온 사람이 죽음도 잘 맞는다고 말이다. 



시한부 환자들은 죽음이 다가올 수 록 고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괴롭히고 말려 죽여가는 죽음은 그 어떤 자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환자를 볼 때 남편은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한다.  강력한 진통제로 인해 잠잠해진 그들의 고통은 약 효과가 다 떨어지면 다시 발작을 하고 도와달라고 아프다고 소리를 친다. 그래도 때론 남편은 신에게 호소한다. "이 사람을 평안하게 데려가소서.  더 이상 이 세상의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이다. 



때론 그 기도가 끝나고 20-30분 뒤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나는 제대로 된 기도를 한 걸까? 그 기도가 옳았던 것일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다른 환자의 몸부림과 고통을 보면 그 기도가 고통을 영원히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죽음은 현실이며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삶을 더욱 진심으로 살 수 있는 건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라마 속 도깨비처럼 몇 천년을 죽지 않고 살아간다면 삶에 진심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Felix Gonzalez-Torres의 골드 비즈로 만들어진 커튼은 방의 공간을 나눈다. 한 방에 두 개의 공간이 나뉘고 비즈 커튼 사이로 보이는 공간은 보이지만 정확하게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게 마치 나는 삶과 죽음과 관계 같다고 느꼈다. 살아있는 자는 알 수 없는 죽음의 세계는 딱 얇은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 하나를 나눠 쓰는 것 같다.  알 수는 없는데 분명 존재하고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미스터리 한 죽음은 문학의 가장 좋은 재료이자 역사에서 새 챕터를 넘기는 일을 하니까 말이다. 아직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커튼이 열리는 순간 두 개의 공간은 하나가 될 것이고 삶과 죽음은 합쳐지게 되는 것. 


작가는 골드 비즈가 주는 비주얼과 공간을 나누는 기능 그리고 비즈 사이로 보이는 선명하지 못한 공간을 나누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비즈를 열고 들어서면 나는 내가 방금 전 서있던 그곳을 비즈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공간이 되어 바라본다. 삶과 죽음은 공존하지만 이 둘이 합쳐지기 전까지 삶과 죽음은 서로에게 선명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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