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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an 20. 2024

추위와 어울리는 그림 이야기

재즈음악과 따뜻한 보리차 그리고 더럽게 추운 겨울밤

한국 뉴스에도 보도가 될 만큼 지난 며칠 미국은 눈도 많이 왔고 춥기도 많이 추웠다. 학교는 휴교령이 떨어지고 길은 얼어붙고 눈 치우는 트럭은 24시간이 모자랐다. 아직 개강 전이었고 병원은 날씨로 인해 문을 닫았기에 오랜만에 아이와 집에 있었다. 집 밖에 나갈 이유가 없던 우리 가족은 쉼 없이 내리는 눈을 즐기다가도 수시로 차고 앞 눈을 치우러 밖에 나가야 했다. 아이는 눈곰을 만들고 밖에 나가 눈 위를 뒹굴다가 들어와서 코코아를 만들어 달라며 마시멜로를 집어 먹는다. 


실내에서 소복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는 풍경은 매우 평화롭지만 밖에 나가 눈을 치우는 일은 전혀 평화롭지 않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하고 나가서 눈 치우는 기계와 삽을 들고 전투적인 자세로 길을 치우고 차고 앞을 치우면 평소 쓰지 않았던 근육을 쓰느라 온몸이 아프다. 눈 오는 날이 로맨틱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삽을 들고 눈을 치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눈과 싸우자 이번에는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체감 온도 -35도 이른 새벽에는 -40까지 되는 날씨였다. 외출 10분 만에 동상에 걸릴 수 있으니 밖에 나가지 말라는 뉴스가 나온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나는 종종 뜨거운 물을 컵에 담아 밖에 뿌리곤 한다.  그럼 그 뜨거운 물이 하얀 눈이 되어 흩날린다. 나름 추운 겨울에 할 수 있는 놀이 같은 거다. 


Gustave Caillebotte의 지붕 위 풍경은 지금 우리 집 지붕과 얼추 비슷해 보인다.  물론 미국 서버브 지역의 집들이 유럽처럼 멋스러운 집들이 아니라 이런 풍경을 자아내진 않지만 말이다. 눈이 오는 날이면 하늘은 매우 흐리다. 흐릿한 하늘에서 하얀 먼지처럼 멈추지 않고 내리면 많이 쌓일 눈이라는 걸 직감한다. 하루종일 밤새 내릴 눈은 함박눈처럼 오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눈이 멈춘 배경을 그렸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하늘은 흐리고 건물도 회색빛이지만 눈 덮인 지붕이 화폭을 밝게 만들어준다. 



하얀 눈 위에 여우의 요염한 움직임, 멀리서 보이는 푸른 하늘의 색이 너무 잘 어우러지지는 이 작품은 Winslow Homer의 The Fox Hunt이다. 이 작품은 마치 어린이 동화책에 나온 일러스트 같아 보인다. 추운 겨울 눈을 헤집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여우와 녀석을 쫒는 까마귀의 모습은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순간이다. 눈만 가득 쌓인 벌판에서 여우는 관객이 아닌 반대 방향을 향해있다. 그런 여우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혀가 날름 나와 있지는 않을까? 코는 벌름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매서운 눈으로 까마귀를 경계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 그림을 보다 보니 매일 부모님 집에 찾아오는 다람쥐 녀석이 생각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우연히 부모님 집 베란다에서 서성였고 아버지는 녀석에게 땅콩 하나를 준 게 인연이 되었다. 그 이후로 녀석은 땅콩과 아몬드를 얻어먹기 위해 매일 부모님 집을 찾았고 그게 기특해서 한 두 개씩 챙겨주다 보니 꺼짐 3년째 매일 부모님 집을 찾아온다. 재미있는 건 다람쥐 사회에서 나름 소문이 났는지 찾아오는 다람쥐가 여러 마리라는 것이다. 생긴 게 다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꼬리 모양으로 구분이 된다. 겨울에는 특히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서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창문 앞에서 서성인다. 녀석은 가끔 일어서서 엉덩이를 흔들며 간절히 애원을 한다.  마치 춤이라도 춰서 눈도장 한번 더 찍겠다는 나름의 구애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 다람쥐한테도 먹고사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다. 서성이면서 때론 춤을 춰야 하고 때론 구걸을 해야 하니까. 


 Monet는 계절마다 날씨마다 달라지는 빛과 사물을 그림으로 담아냈고 Haystack 시리즈야 말로 사계절의 변화를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냈다. 늦은 오후 해가 다 저문 시간 건초더미에 쌓인 눈을 화폭에 담은 그의 그림에서 겨울의 삭막함은 느껴지질 않는다. 추운데 견딜만하고 차가운데 또 나름 따스함이 있다. 그건 그가 차갑고 따듯한 색을 조화롭게 섞어낸 마술 같은 색감 때문일 것이다. 겨울에는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이는 시기지만, 그것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의 순간임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건 봄이 오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작가는 그걸 알았기에 삭막하고 차갑고 매서운 겨울을 이리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눈은 아직 녹지도 않았고 추위는 여전히 매섭지만 새 학기는 시작되었다. 나의 일상은 지난 학기처럼 가르치는 일과 치과 매니저 일을 하며 바쁘게 돌아간다. 아이는 사춘기 직전 삼춘기에 접어들었고 남편은 여전히 바쁘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린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책을 읽다가 게임을 하고 눈이 오면 눈을 치우고 집이 너무 추우면 장판을 틀어 몸을 녹인다. 


몇 달 이런 날씨를 참으면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봄바람이다. 절대 녹지 않을 것 같던 눈은 따뜻한 햇살에 고집을 꺾을 것이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에도 아주 작은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그럼 조금 덜 상막해 보이겠지. 그때가 오면 남편과 아이와 손을 잡고 동네 산책도 할 수 있을 것이고 귀한 햇빛을 누릴 수 있을게다.  Monet의 그림처럼 추운데 견딜만하고 차가운데 나름 따스함이 있는 겨울을 보내고 싶다.  봄이 올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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