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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an 08. 2024

날 사랑해 줘요

견딜 수 있게 버틸 수 있게 사랑해 줘요. 

삶은 늘 고비의 연속이다. 수많은 예술작가들은 크고 작은 고비들을 넘기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고 그 고비들을 마주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삶은 아직 다 여물지도 않은 나를 집어던져놓고 알아서 살아보라고 한다. 어마무시한 정글에 제대로 갖춘 무기는커녕 내 몸 하나 제대로 추스를 기력도 없는데 적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하고 어떤 어려운 고비도 버티고 이겨내 살아남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도대체 어쩌라고! 소리를 치고 싶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나도 너도 쟤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고비들을 마주하고 경험하고 내동댕이 쳐지면서 잔근육이 만들어지고 요리조리 피하고 숨다가 한방 맞기도 하지만, 또 나름의 맷집이 생기다 보면 또 그다음 고비들을 마주하고 똑같이 반복한다.


삶의 어려움은 비디오 게임처럼 쉬움에서 어려움의 레벨로 옮겨지진 않는다. 크고 작은 파도가 있듯이 어려움도 견딜만한 것과 도저히 못 견디겠는 것들이 잔잔하게 오기도 하고 폭풍처럼 오기도 한다.  코미디에서 드라마로 장르가 바뀌다가 갑자기 호러 무비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기막힌 액션씬이 필요하다가도 급 로맨스로 바뀔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한없이 기가 막히게 행복하고 즐겁다가 어이가 없고 슬프다가 분노하고 놀라 자빠지다가 아프다가도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매번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학생들에게 물었다. 


지금 네가 상대해야 하는 거대한 적은 누구니? 너는 그 싸움에서 이기고 있니 지고 있니? 



매 학기마다 묻는 똑같은 에세이이지만 이번 학기만큼은 반응이 달랐다. 마치 언젠가 누군가가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 학생들은 진심을 가득 담아 적어내려 갔다. 그리고 나는 에세이를 읽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울컥하고 눈물 때문에 그렁그렁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중 유독 나의 영혼을 거슬리게 하는 적이 있었으니 그건 자기 자신을 적으로 삼는 학생들의 글 때문이었으리라. 


내 삶의 가장 큰 적은 나라고 시작하는 글들이 수십 개였다. 

게으른 나

우울증을 겪는 나

ADHD를 가지고 있는 나

예쁘지 않은 나

뚱뚱한 나

친구가 없는 나

돈이 없는 나

건강하지 못한 나

외로운 나

불안한 나

걱정이 많은 나

꿈이 없는 나

도박에 빠져 있는 나

마약에 손을 대는 나

사회성이 없는 나


내가 바라는 나와 그렇지 못한 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 스스로가 적이라고 했다.  나 자신이 적이 되고 무찔러야 하는 상대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힘내! 파이팅!" 따위의 말은 역겨움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씨발 네가 뭘 한다고 그딴 싸구려 말로 날 위로하려 들어? 


문범강, 지켜보다 자아

핑크빛 백그라운드에 검은 먹물이 가득한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어떤 절망감을 느꼈을까?   처음 문범강의 지켜보다-자아라는 작품을 봤을 때 뜨거운 불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듯한 화를 느꼈던 건 그의 자화상이 곧 나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리조리 자세히 훑어봐도 슬픔과 지독한 외로움으로 가득 쌓여있던 내 삶은 답이 없는 인생이었다. 나의 20대는 그랬었다. 답이 없었고 스스로를 루저라고 여기며 저주하는 게 당연했던... 그래서 삶에 죽음을 가까이 두고 싶었던 그 시절 내 인생의 최고의 베프는 말보로 라이트와 블랙커피였다.


그 힘든 시기를 버티고 버텨서 잔근육이 생기고 맷집도 생기고 대가리도 마음도 성숙해진 엄마이자 선생님이 되어 내 학생들 앞에 섰는데 그들의 어려움을 읽자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무엇으로 널 위로할 수 있을까? 

우린 어떻게 하면 Self hate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Frida Kahlo, The Broken Column

Frida 말고 없었다.  

평생 고통을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야 했던 그녀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처참하게 난도질을 당해야 했다.

그녀라고 자신을 삶을 저주하지 않았을까? 


내가 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내가 디에고를 만나지 않았다면? 

디에고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아니 디에고가 나만 사랑해 줬다면?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면? 

내가 디에고의 아이를 낳았다면?


삶의 모든 절박하고 절망스러운 순간 스스로를 저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삶의 고비 앞에서 그 어떤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삶의 사나운 파도에 삼킴을 당했을 것이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붓으로 자기 아픔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그녀는 자신의 삶에 거짓이 없었다. 


내 인생 진짜 뭐 같아. 

알아 나도 비참하고 서럽고 기가 막히게 절망적인 거.

그런데 어쩌라고? 

그녀가 인생의 전쟁에서 가진 최고의 무기는 솔직함과 정직함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했던 건 그 어떤 작품도 그녀 자신을 꽤 괜찮고 잘 나가는 고풍스러운 여류 작가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참한 삶에서 괜찮은 척하지 않았기에 작품이 정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직함은 그녀가 그 어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버티고 버틸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힘" 말이다. 



나로 살아가는 힘. 

그것은 어쩌면, 내가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 앞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난 그래... 그런데 뭐 어쩌라고?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고 있음에 후한 점수를 줘도 마땅한 건 삶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태어났고 살아가고 있고 견디고 있고 버티고 있는데 누가 우리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평생을 나와 함께 해야 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고 토닥이다가 또 으쌰으쌰 하면서 한 걸음 옮기고 또 옮기다 보면 또 살아지는 게 삶 아닌가. 


그러니까... 

날 좀 봐줘요.

날 좀 사랑해 줘요.

날 좀 토닥토닥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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