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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Mar 15. 2024

슬기로운 셀프 탐구생활

남들은 다 지들 생각만 할 뿐이니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시대에서 AI의 출현은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존재를 맞닥뜨리게 하였기에  AI와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요즘 시대 최대의 고민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노래 하나를 듣고 싶으면 시디를 오디오에 넣어 원하는 트랙을 클릭클릭 해서 들어야 했고 궁금한 토픽이 있다면 구글과 네이년에서 찾아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알렉사나 시리 같은 애들한테 시키고 Chat GPT에게 물으면 찾을 필요도 없이 구구절절이 다 알아서 내 필요를 채워준다.  


사실 이런 세상은 인간이 덜 수고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고와 생활 방식을 이전보다 덜 움직이고 덜 읽고 덜 생각함으로써 잉여 시간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럼 인간은 그 잉여 시간을 그 어느 때보다 잘 활용하고 있을까?


Chat GPT의 출현으로 학교는 비상에 걸렸다. 리서치 페이퍼와 숙제 에세이를 하나같이 Chat GPT를 통해 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이제 학교는 AI를 통해 쓴 숙제를 잡아내는 또 다른 AI  프로그램을 사용하여부정행 위를 저지른 학생을 걸러낸다.   


Chat GPT가 써줄 수 없는 숙제는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나는 정말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나눠야만 하는 질문을 숙제로 내고 있다. 미술 작품을 소개하며 그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경험과 감정을 이끌어내어 지금 너네는 어떤 경험과 감정을 느끼고 있니 식의 질문들이다. 그러다 보니 에세이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적어내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누구인가!

이 원초적인 질문에 서서히 나만의 답이 생기는 시기는 30대 끝머리쯤부터라고 생각한다. 40이 넘어가면서 점점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확신과 선명한 답이 나오면서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진다. 그건 인생에서 안되는 것 못하는 것 불가능한 것들이 매우 분명 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느 정도 포기가 되고 타협이 되니까.


10대와 20대에게 너는 누구니를 묻는다면, 보통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별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것 같다.  누가 좋고 누가 싫고 뭐가 좋고 뭐가 싫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분류해 가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파악을 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될 때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냥 흐르게 놔둬야 하는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과 감정을 글로 적는 연습을 시킨다. 그건 그 똘똘하다는 AI가 해줄 수 없는 내 학생들만의 고유 영역이니까 말이다.  내 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배운 건 지금 20대는 "경험"이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걸 알았다. 내가 직접 해보고 느끼고 증명하고 확신하는 것.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내고 알아내는 과정이 매우 단조롭고 짧아진 건 틱톡과 릴같이 빨리 결과물을 보여주는 소셜미디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분 몇 초 안에 시작과 중간과 끝이 다 들어있다. 100세 시대 매번 몇 분 몇 초로 삶이 순간순간 채워지는 느낌이다.


Gerhard Richter

얼마 전 내 에세이의 질문은 우리에게 현실이 필요한가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와 전화기 앞에서 보내는 우린 현실세상 보다 스크린 세상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부분 내 학생들은 현실은 꼭 필요하다고 했으나 가상의 시대가 더 커질 수 록 현실과 가상의 경계지점은 흐려질 것이라 했다. 그건 마치 Gerhard Richter의 그림 같은 세상이라 생각되었다. 분명 형태가 있었는데 그 형태가 점점 불분명해지고 뒤섞여버려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구분도 판단도 안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맞이해야 할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분명 사람같이 생겼는데 사람이 아니고

분명 음료 같은데 마실 수 없는 것이며

분명 공간 같은데 공간이 아니며

분명 창문 같은데 창문이 아닌 것

분명 진짜 같은데 진짜가 아닌 것


진짜 같은데 진짜가 아닌 것에 둘러싸여 있다면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딸을 마주했다.

"오늘 하루 어땠어?"

"좋았어"

"오늘 최고 좋았던 순간은 언제야?"

"지금. 엄마랑 있는 지금 이 순간!"

"오늘 되게 한 거 많잖아. 그런데도 지금이야?"

"어.  엄마가 여기서 내 손 잡고 있잖아"


아이에게 진짜는 만지고 대화하고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최고라 했다.


그렇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안정을 느낀다.


학생들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강의 중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너희가 진정으로 안정감을 느끼려면 너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해. 나는 무엇으로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며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그걸 알면, 가짜와 진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에서 휩쓸리지 않아.  나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은 바탕이 기초가 튼튼해지니까. 기초가 튼튼한 사람은 뿌리가 건강하게 내리니까...


남들은 지네들 사는데 바쁘다.

남들은 별로 나한테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에게 가장 큰 관심을 쏟고 나를 탐구하자. 매우 슬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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