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놈을 걷기로 길들여보기로 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글을 쓸 생각과 여유조차 없는데도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에 들어왔다. 난 뭘 써야 할까? 이건 마치 오늘 뭘 먹을까? 같은 맹락의 고민 같다.
무얼 먹는다는 건 생존의 문제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정신의 건강과 생각의 정리를 위함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과 감정이 뒤엉켜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돼버리는 느낌이다.
그렇게 엉켜있는걸 좀 뗘내고 잘라버릴 건 잘라내고 간직해야 하는 것은 간직하고 버려야 할 건 버리기 위해 글을 쓴다.
돈을 번다는 것은 노동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 중에 단 한 개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고 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모든 일에 매우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열심은 어마어마한 체력을 요한다. 나의 체력과 마음과 태도는 단 한 번도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내 마음과 태도는 늘 체력을 탓한다. 얘가 받아주질 않으니 늘 피곤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데... 사실 그렇다. 늘 저질체력이 문제였다.
지난 한 달은 세상의 모든 피곤이 찾아와 나를 꿀꺽 삼켜버린 것 같았고 내 체력은 바닥을 쳤다가 땅속으로 꺼졌다가 다시 내동댕이가 쳐졌다.
체력이라는 고약한 놈을 좀 훈련해 보려 했더니 잠을 잘 자야 하고 건강하게 먹어야 하고 운동을 많이 해줘야 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놈인가.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지만 나 하나쯤 체력이 없어도 국력이 흔들리진 않을게다. 운동이란 것과 단 한 번도 친해본 적이 없는 나. 하지만, 최근 들어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이 생사에 관한 일이 되어버릴 정도로 심각한 일이 된 것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무엇인가?
수영을 좋아하지만 수영은 장소와 시간이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투잡을 뛰고 육아를 하기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그래 걷자.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돈 안 들고 아무 때나 시간만 나면 가능한 게 걷기 아닌가!
8027보 3.45마일
5681보 2.41마일
11685보 4.94마일
9983보 4.25마일
9781보 4.2마일
10382보 4.37마일
8609보 3.64마일
9232보 3.88마일
13464보 6.1마일
하루에 8000보 이상 걷는 걸 목표로 하고 아침에 잠깐 저녁에 잠깐을 나눠 걸었다. 8000보를 못 걸어도 나 스스로에게 실망은 하지 말자고 타이른다. 인생이 계획대로 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싶다. 걷기 만큼은 꼭 버릇처럼 취미처럼 글 쓰는 것처럼 내 삶의 일부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을 뽑는다면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은 거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몸의 피곤함을 느끼고 그 피곤함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기분도 처지는 걸 느꼈다. 역시 몸과 마음은 너무 섬세하고 예민하게 서로에게 엉켜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내 마음의 상태가 내 가족과 내 생활과 직장에 전달되는 게 싫다. 내 우울한 감정이 내 가족에게 퍼지면, 내 기초가 흔들린다. 내 기초가 흔들리면 삶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삶은 매우 귀찮다.
제대로 잘 살라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정말 잘 살라면... 내 마음과 몸과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너무 귀찮은데... 잘 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