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상처를 유산처럼 물려주려 하는가.
부모는 자식에게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늘 상기시켜 줘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함으로써 자식에게 생채기를 내고 자존감을 짓밟는다.
너 때문에 엄마가 (혹은 아빠가) 살아...
부모는 부모의 삶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삶이 있다. 부모의 삶이 자식의 삶이 될 순 없고 자식의 삶이 부모의 것일 순 없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했더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인격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식 때문에 사는 부모를 둔 자녀는 얼마나 무거운 부담감을 지고 살겠나?
부모는 네가 있어서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졌다고 고맙다고 해야 한다. 네가 존재해서 더 열심히 잘 살고 싶어 졌다고. 그런 마음을 갖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자식 다 소용없다.
자식의 존재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식은 나의 분신이 아니다. 자식은 내 어린 시절의 미니미가 아니다. 내 아이가 섭섭하게 하였다고 한들 그것은 내가 자식에게 느끼는 개인의 감정을 필요의 가치와 무가치로 말을 내뱉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것이다.
자식은 그 존재 이유만으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너 때문에 내가 창피해서....
자식이 지하 10층에 나자빠진 모습이면 부모는 지하 11층으로 내려가 자식을 받쳐줘야 한다는 김미경 강사의 말에 눈물이 났다. 부모가 창피한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새끼가 아픈 것이다.
한국은 shame culture 즉 체면문화가 깊숙이 깔려 있다. 남들 앞에서 자랑스러워야 하고 보기 좋아야 하지만 그들이 부러워한다면 최상이다. 부모는 자식이 그러길 원한다. 남들에게 자랑스럽고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 되라고 말이다.
부모는 알까?
자식의 자존감은 부모가 새우고 그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도 부모다. 자식이 몸과 마음 둘 곳이 가정인데 부모인데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어디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네 아빠 닮아서 네 엄마 닮아서....
한때 당신들도 죽고 못살아서 결혼하고 사랑하며 낳은 자식 아닌가. 그런 사랑의 결실에게 아빠 닮아서 엄마 닮아서라고 못났다고 하면 자식은 벼랑 끝에 몰린다.
씨발 어쩌라고 그럼...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자식 앞에서 부모는 부모로 존재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은 친구가 아니다. 부부 사이에 있던 일은 그 둘이 해결해야 한다. 자식에게 누구의 편에 서 달라고 해서는 안된다. 자식은 그때 절망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원망하게 된다. “왜 난 태어나서 이들에게 고통의 존재가 된 걸까?”
내 아이가 살아가며 이 질문을 품고 산다면 얼마나 가여울까. 사랑만 받아도 충분하지 못한 인생인데!
자식은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그걸 알면 자식은 어느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부모가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힘을 낸다
안다.
부모도 사람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그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들 역시 그들의 부모에게서 배우고 얻은 것들이란 사실 말이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무섭고 무거운 책임일 수 도 있다.
내 엄마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아.
내 아빠 같은 아빠는 되고 싶지 않아.
나에게 상처였던 부모의 모습을 내 자식에게 그대로 보이는 내 모습은 절망스럽다.
기초가 튼튼하면 뿌리가 잘 내리는 것. 그것은 성장의 기본이다. 서툴 수 도 있고 실수도 많고 상처를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충분한 사랑의 표현과 노력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바탕을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