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이다.
15세 이후 부모님과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환경에 매우 익숙했다. 내 결정에 따라 내 인생이 바뀐다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렸기에 나는 어린 나이에 비해 매우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생각과 고민 그리고 결정의 스피드는 빨랐고 그 결정에 따른 행동도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런 나는 연애도 사랑도 이별도 결혼도 뭉그적 거림이 없었고 인간관계에서도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질질 끌려갈 것 같은 모든 관계를 쳐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참아야 할 사람과 상황에선 인내했다.
내 최고의 장점이라면 그 인내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고 가치 있는 것이 내게 인내력을 요구하면 참아냈다. 배우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얻기 위해서 자존심도 버려야 하고 때로는 무시와 차별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걸 견뎌냈다.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선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삶은 공짜가 없고 쉽게 얻어지는 게 없으며 쉽게 얻어지는 건 한없이 가벼운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걸 알면 대충 살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았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 있었고 친절해질 수 있었다.
매번 내가 가졌던 열등감과 불안은 내 존재의 가치를 뒤흔들곤 했지만, 내가 견디고 버티며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 했던 열심은 결국 나 스스로를 매우 안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퍼부어야 했던 노력
아이가 제대로 된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부은 노력
삶의 근본이 되어준 부모와 형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예술 한 모금이 삶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길 바라며 쏟은 열정
소중한 인연이라 여긴 이들에게 변함없이 지키려 했던 우정
삶에서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자 나의 에너지와 열정을 집중하기가 편했다. 내가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희생하기로 마음먹을 이유가 분명해지자 겉치레가 사라졌다.
잘 알지도 못하고 깊은 관계에도 있지 않는 이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내가 아닌 나로 연기를 해가며 시간을 낭비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고 내가 지닌 사랑은 너무 거대하다.
내 사랑과 정성을 낭비할 사람들에게 내 시간과 마음을 주지 말자.
하지만 내 사랑과 정성을 받아 마땅할 이들에게는 짜게 굴지 말자.
그리고 인내하자.
종종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힘쓰는 이들에게 내가 툭 던지는 말이 있다.
"그거 예수도 못한 거야"
그 한 마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다시 그에게 말한다.
"예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해. 모든 걸 만족시킨다면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경계가 무너지거든. 그 경계가 무너지면 예수의 캐릭터도 무너질 수밖에 없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위선자가 될 순 없으니까"
내 사랑과 집중과 열정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후하게 베풀어도 모자란 게 인생이다.
삶은 너무 짧고 빠르게 순식간에 후다닥 지나가는데 지혜와 통찰력과 결단력도 그 스피드로 가야 뭐라도 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