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대신 다 해주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살던 호스트 패밀리 아들이 있었는데 참 한없이 싸가지가 없었다. 당시 나는 영어를 배워야 하는 입장이기에 미국인 가족과 같이 사는 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 여기고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가족들도 애새끼도 워낙에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라 사실 내가 그들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표현은 너무 고급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혹은 싸우기 위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영어를 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나는 너무 어렸고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나이에 철저히 혼자였다.
그렇게 혼자 자란 나는 매우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중국집에서 서버로 캐시를 받으며 주말에 일을 하기도 했고 초밥집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대학 가서는 뷰티서플라이 가게에서 몇 년 일을 하다가 백화점 상점에서도 일했다. 나중에는 학교 갤러리에서 또 대학원 때는 TA와 Admission에서도 일을 하다가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티칭을 시작해서 올해 16년째에 접어들었다. 남편도 목사가 되기 전에 피자집, 옷가게, 은행원 등의 일자리를 거쳤다. 우린 결혼 전에도 후에도 단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을 만큼 학업과 일을 동시에 다 했다. 우리가 버는 돈은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랐지만, 그 모자란 돈이라도 벌고 있는 우리는 자존심을 꺽지 않아도 되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 같은 거 말이다.
그런 우리의 독립적인 삶의 역사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일치감치 아이에게 이런 가르침을 줬다.
1. 네 인생의 모든 책임은 네 것이다.
2. 엄마 아빠는 너 대신해주지 않을 것이다.
3. 너를 지원하고 지지할 것이고 응원할 것이지만 네 할 일은 온전히 네가 해야 할 것이다.
4. 네가 하는 모든 일은 네 인생을 위함이지 엄마 아빠의 인생을 위함이 아니다.
5. 네가 잘하면 엄마 아빠는 기쁘겠지만 그 결과를 가장 크게 느끼고 경험할 사람은 너다.
언제가 등굣길에 아이는 당장 차를 돌리라고 했다. 숙제를 폴더를 책가방에 넣지 않았다며.....
충분히 집에 들러서 가져갈 수 있었지만 나는 차를 돌리지 않았다.
가서 혼나. 네가 챙겨야 했는데 안 했잖아.
아이는 차를 돌리자고 사정을 했지만 나는 응해주지 않았고 결국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
그런 경험이 몇 차례 생기자 아이는 스스로 숙제를 잘 챙길 수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에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건 최악이니까.
예전에 SKY대학 중 한 곳에서 교수로 계시는 지인과 식사를 할 때였다. 그는 내게 미국 학생들은 뭘 고민하나요?라고 물었다. 그 질문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이제 막 20대가 갖는 고민은 대부분 비슷할 텐데 왜 콕 집어 미국 학생들이라고 칭하시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교수님이 말했다.
요즘 한국 학생들은 사춘기를 대학에 와서 경험하고 있어요
초중고 대학 입시 준비 내내 엄마 아빠가 수업 스케줄, 공부 스케줄, 원서 넣어야 할 학교를 대신해주고 스스로 무언가 생각하고 결정하고 그 결정을 이끌어낼 만한 내적능력을 키우지 못했어요.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경험하고 모험할 힘을 길러주질 않아서 대학에 왔을 때 막상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고민해요. 전공도 부모님이 선택해서 온 친구들도 많아요. 그런 애들은 공부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애들도 많고.... 친구를 어떻게 사귈지도 모르겠다는 학생들도 많아요. 공부하느라 사회성을 키우지 못한 아이들도 많으니까요.
정작 뭘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조차 해볼 여유도 틈도 없었을 인생이라 생각되자 슬픔이 느껴졌다.
부모의 역할은 뭘까?
나는 아이를 키우며 종종 이 질문을 한다.
아기였을 때는 생존을 위해 밤낮 아이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크는 것에 집중했다면 유아기에 들어서서는 먹고 싸고 크는 일 말고도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잘 형성하고 가족과 집이 가장 따듯하고 좋은 곳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만만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게끔 하고 그 속에서 성공을 맛보는 경험을 하는데 돕는데 집중하고 있다. 너 스스로 시도해 보고 실패도 경험해 보고 성공도 경험해 보면서 자신의 재능과 한계와 그것에 대한 바른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지금 내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싫어서 그냥 해주는 부모들을 종종 본다. 사실 그건 아이가 힘든 것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든 자신 때문에 대신해주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해줄게
아빠가 해줄게
그런 도움을 자주 받는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신 없어하고 스스로 가치 없는 사람이라 여기기가 너무 쉽다.
아이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부모는 치어리더가 되어줘야 한다.
팜팜을 들고 팔짝팔짝 뛰면서 너를 응원해! 넌 할 수 있어! 실패하면 엄마 아빠한테 와서 쉬었다가 다시 시도해! 우린 언제나 여기에서 널 응원할 거니까!
그럼 아이는 또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또 싸우고 버티고 견디고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