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정리

침범할 수 없는 경계 위에서

내향인의 운동법

by MamaZ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요가를 매일 가려고 한다. 혹시 가지 못하는 날이면, 집에서라도 유튜브를 틀어놓고 따라 한다.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 나는 요가를 ‘즐긴다’. 물론 여전히 따라 하기 벅찬 동작들이 많고,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요가 그 자체의 매력에 빠졌다는 점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운동을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왜 요가와 수영만큼은 좋아할까?”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바로 ‘나만의 공간이 확보되는 운동’이라는 점.


수영장은 내가 오갈 수 있는 레인이 정해져 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매트 위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다. 종종 수영장에 레인이 부족해 두세 명이 함께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조용히 레인을 나와버리곤 한다. 누군가 내 공간을 침범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나만의 공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내 방, 내 책상, 내 매트 위에서 나는 충전된다.
그런 다음에야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남편도 비슷한 성향이라,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지낸다. 함께 있지만 각자의 공간이 보장될 때 오히려 더 깊은 쉼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외로움’을 본다지만, 나는 그 그림들에서 고요함과 평안도 함께 느낀다. 외로움과 평안은 반대말 같지만, 묘하게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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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문득 홀로 남겨질 때 찾아오는 그 ‘조용함’.
그 조용함이 영적인 경험으로 이어질 때, 그것은 곧 ‘고요함’이 되고,
그 고요함이 다시 ‘평안’으로 다가온다.


그건 마치 뉴욕 맨해튼의 거리에서 북적임을 뚫고 어느 조용한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과 같다.
신의 존재 앞에서 스스로 작아지고, 말없이 감동하는 그 순간 말이다.


요가를 마치고, 땀으로 젖은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오늘도 매트 위에서 깊이 집중하며, 많은 이들 속에서도 철저히 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다.

외로움이 아니라, 고요함과 평안으로 무장한 시간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몸도, 마음도, 태도도.


요가는 좋은 운동이다.
매트가 있으니까.
내 공간이 있으니까.


그리고 에드워드 하퍼는 진심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고요함을 아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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