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는 피부색 넘어에 있습니다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추운 날이면 양말을 꼭 신고 잔다. 발이 따뜻하면 몸이 따뜻해진다고 했던가. 유독 발이 차면 온몸이 으슬으슬해진다. 따뜻한 수면양말을 신고 두툼한 옷을 입고 장판까지 틀고 온 몸이 따뜻함으로 감싸지면 그때서야 스르르 잠이 든다. 유난히 겨울이 혹독한 곳에서 오래 살다보니 추운날이면 겨울잠을 준비하는 곰마냥 따뜻하게 잠들기 위해 주섬주섬 챙기는 것들이 많다.
지난주 겨울옷을 넣고 여름옷을 꺼냈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곳에 살면 여름옷 보다는 겨울옷이 더 많은법. 게다가 겨울옷 부피가 여름옷의 몇배 아닌가. 녀석들을 옷걸이에서 다 빼고 박스에 넣자 옷장이 텅 빈다.
옷장의 빈 공간을 보자 답답함이 확 풀리는것 같다. 어쩌면 나에겐 그런 비움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눈을 둘 곳이 필요했고 넉넉하게 여유가 있는 빈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몇년동안 입지도 않았던 하지만 돈 생각나서 못버리고 있던 모든 옷을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이거 얼마주고 산건데...
이 브렌드 좋은건데....
그냥 갖고 있을까?
인터넷에 팔면 좀 받지 않을까?
정리귀신이라도 들린듯 과감하게 정리하는 나에게 미련이라는 마음이 궁시렁 거렸지만 무시했다. 오늘 만큼은 내가 정리귀신에게 순종하리라. 그렇게 버리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옷을 크고 작은 봉지에 담았다. 12봉지다. 이 얼마나 많은양의 옷인가. 그리고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 다음날 도네이션 센터에 가져다줬다.
그 많은 옷을 정리하면서 느낀건 내가 좋아하고 잘 입는 옷은 사실 몇개 안된다는 것이다. 입는건 4-5인데 옷장안에 30개가 있었다고 해야하나? 나는 왜 진작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살았나 싶다. 정리가 다 된 내 옷장에는 나를 나답게 하는 옷들로 채워져있다.
패턴이 거의 없고, 무색에 가깝고, 치렁치렁하거나 러플이 있는 여성스러운 옷은 눈씻고 찾아봐야 찾아볼 수 없다. 거의 바지 어쩌다 치마 한 두개. 스트라이프는 좋고 간혹 무색에 맞춰입을 밝고 튀는 단색의 옷들도 몇개 보인다. 너무 튀지 않게 하지만 너무 지루하고 싶은 않은 내가 옷장에 담겨있다.
Amy Sherald의 전시에 다녀왔다. 그녀의 전시를 몇주차로 놓쳤던 지난 뉴욕 방문 (New York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 라는 제목으로 뉴욕 여행기를 올렸었다) 이 아쉬워 아줌마 친구 세명과 다시 뉴욕을 다녀온것이다. 아줌마 셋이서 쏘다닌 뉴욕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은 Amy Sherald의 작품을 이야기 하고 싶다. 이제까지 옷 얘기를 한건 그녀의 작품으로 다가가기 위한 빌드업 이었으니까.
Amy Sherald 는 아주 오래전부터 미술계에서 찬사를 받아온 현대 작가이지만 미쉘 오바마의 자화상으로 버락 오바마를 그린 Kihinde Wiley와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개인적으로 Kehinde Wiley는 너무 과하다싶은 욕망이 그림 구석구석에 담겨 있기에 Amy Sherald 의 작품을 더 선호한다. 그녀의 작품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회색빛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흑인들도 제각기 다른 피부톤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작품속에서 동일한 톤을 사용함으로서 미국 사회가 생각하는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똑같다는 생각을 표현한게 아닐까 싶다.
전시의 주제 American Sublime이라는 제목은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예술과 문학에 등장한 개념이라고 한다. 자연의 장엄함과 인간의 감정이 만나는 지점을 묘사하는데 모던 아트에서는 존재의 무게와 감정의 극단같은 현대적 숭고미를 표현한다고 한다. 흑인 모델과 화려한 패션을 접목하여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작품을 묶어 왜 American Sublime 이라는 제목으로 이 전시를 연걸까? 전시의 주제는 작품들을 좀더 깊이있게 들여다보게 만들기에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미국의 숭고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천천히 그녀의 작품을 들여다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성격과 태도가 보인다. 그들의 제스쳐, 그들의 바디랭귀지, 그들의 눈빛은 선명함이 있다. 촛첨이 또렷하고 관객을 응시하는 눈빛에 흐릿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원하고 바라는 바가 매사 분명할것 같은 이들에게서 생명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이 입은 옷에서 밝고 통통 튀는 생명력, 자신감과 편안함이 동시에 깃들여 있다. 개인의 역사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강단이 아우라가 되어 캐릭터를 밝힌다. 작품속 캐릭터는 그 누구에게도 얕잡아 볼 틈을 허락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Amy Sherald의 작품을 보면서 Glenn Ligon의 작품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I DO NOT ALWAYS FEEL COLORED (나는 항상 유색인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I FEEL MOST COLORED WHEN I AM THROWN AGAINST A SHARP WHITE BACKGROUND (나는 새하얀 배경 속에 놓일 때 가장 나 자신이 유색인이라는 걸 느낀다.) 라는 문장을 반복한 그의 작품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어떠한 것인지 말해준다. (Zora Neale Hurston 의 글을 Glenn Ligon 이 작품으로 만듬)
나를 질질 끌고나와 인종이라는 벽에 몰아넣자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나의 피부색만 덩그라니 남아 도드라진다. 나라는 존재가 인종이라는 고정관념에 들어서면 나는 투명인간이 된다. 존재 가치도 내 개인의 생각과 감정과 역사도 내 피부색 하나로 퉁쳐진다. 나라는 존재는 인종이라는 색안경속에 사회가 가진 통속적인 고정관념 아래 해석이 된다.
흑인이니까 넌 분명 게으를꺼야.
흑인이니까 넌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않았겠지.
흑인이니까 넌 가난하겠지.
흑인이니까 넌 마약을 사고 팔고 갱단에 속해 있겠지.
넌 히스패닉 이니까
넌 중국인이니까
넌 한국인이니까
유색인종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것이다. 그래서 나는 Amy Sherald의 작품이 너무 좋았다. 인종의 렌즈로 작품을 바라보지 말고 주어진 인생을 치열하고 멋지고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는 숭고한 한 생명으로 볼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눈이 즐거워서 마음이 즐거워질 수 있는건 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Amy Sherald의 작품은 미술을 알지 못해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그건 정말 작가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난해하고 못알아먹겠다 싶은 작품들 속에서 길 잃은 어린양마냥 도대체 뭘 어쩌라는거야 싶은 작품들이 미술을 다가가기 어려운것으로 만들곤 하지만 Amy Sherald는 그렇지 않다. 매일 선택하고 매치하고 입는 옷, 즉 패션이라는 주제는 다가가기 쉽다. 게다가 하모니를 이루는 색감은 캐릭터와 옷을 어울어지게 만드니 보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것이 이 작가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깊이가 있는 작품에 즐거움까지 더하니까.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 가벼워진 내 옷장에서 옷을 골라본다.
나답게 하는 옷은 무엇일까? 무채색의 화려하지 않은 옷들을 골라 입지만 귀걸이 만큼은 빨간색을 고른다. 지루해보이지만 지루한 사람은 아니고 싶은 내가 고른 오늘의 패션이다.
내 피부색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난 그냥 나 답길 원하고 사람답길 원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내가 속한 사회도 나를 그렇게 봐주길 원한다. 내 열정, 사랑, 꿈, 열심.... 인간을 인간답게하는 모든것을 내 삶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면 Amy Sherald의 작품처럼 내 삶도 얼마나 조화롭겠나.
오랜만에 본업에 맞는 글을 쓰니 좋다. 예술은 얼마나 멋진가.
*Amy Sherald의 American Sublime은 샌프란시스코 모마에서 처음 열렸고 그 다음 뉴욕 위트니 뮤지엄으로 옮겨왔다. 샌프란시스코 전시 사진을 보니 위트니보다 좀더 짜임새있는 레이아웃이다. 게다가 색감의 대비를 강조시키기 위해 벽까지 까맣게 칠했으니 샌프란시스코에서 봤음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전시 하나를 보러 가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멀다. 보고싶은 전시를 보러가려면 좀더 열심히 벌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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