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희망이 없다.

by MamaZ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은 네폴레옹이 프랑스 군대를 데리고 스페인 마드리드를 침략했을 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난 이 작품을 학기 시작할 때마다 그림을 어떻게 감상하는 게 좋을까?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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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어디에 눈이 가지?

왜 그 부분에 눈이 갈까?

색감 때문에?

제스처 때문에?

표정?


자 그럼 눈가는 부분부터 잘 보자. 뭐가 보이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흰 옷을 입은 남자에게 가장 먼저 시선이 간다고 했다. 양손을 벌리고 항복하는 자세를 하는 그는 흰 셔츠와 노란 바지를 입고 있다. 저 무리 중 가장 밝은 색의 옷을 입고 가장 큰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왜 저리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자연스레 그 이유를 찾게 된다.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신무기를 들고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군인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저 각진 저 군복에 구겨 넣은 몸뚱이만 보일 뿐이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저들의 모습에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다.


그다음 눈이 가는 부분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와 피다.


홍건한 피가 바닥에 흐르고 이미 차가운 바닥에서 목숨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이 보인다. 그 뒤로 그 어떤 무기도 없이 빈손으로 다음 죽을 차례를 기다릴 사람들이 보인다. 바닥에 쓰러진 이들은 살아있는 이들의 미래인 것이다. 너희들은 차례차례 네 동료들처럼 저리 죽을 것이다.


이제 주변을 보자.

어두컴컴한걸 보니 밤이다. 그리고 저 넘어 건물이 보인다. 화려한 외향이 마치 교회 같다. 하지만, 늦은 밤이라 그런 걸까? 교회 건물은 어두움과 적막뿐이다. 아니 어쩌면 작가는 이 안타까운 죽음과 잔인한 폭력을 구해줄 신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도 없고 희망도 없고 죽음과 절망뿐이라고 말이다.


나는 강의 시간에 매우 발랄하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 발랄하게 설명할 만큼의 밝은 작품은 아니다. 그저 이 작품 자체가 그림을 보고 이해하고 느끼는 데 있어서 설명하기 좋아서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제 문득 그림을 설명하다가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어째 200년 전 그림에서 오늘의 현실이 보이는 걸까?

미네소타에서 불법이민자를 잡겠다며 자국민을 총으로 쏘고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버리는 지금 우리의 이 상황과 뭐가 다르지?


내 나라 내 도시를 지키겠다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학대를 하고 폭력으로 다스리고 살아있는 자들에겐 두려움과 증오의 씨앗을 심어준 건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전쟁을 하고 신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듯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개죽음 아니면 의로운 죽음 둘로 나뉘고 그 두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부류로 나눠진다. 정당한가 아닌가로 말이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고 정의와 안전과 평화를 위해 거리를 나오면 총을 든 누군가는 그들 역시 정의와 평화와 안전을 위해 싸운다고 한다.


예술에 타임 리밋이 없는 건 인간 사회가 동굴에서 불 피우고 살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평화와 안정과 양보와 사랑이 가치와 삶의 바탕되어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100년이 더 지나고 200년이 더 지난다고 한들 사람들은 고야의 그림에서 그 시대를 볼 것이다. 예술은 영원하고 인간은 영원히 잔일 할 테니.


오랜만에 본업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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