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30보의 우정과 22508보의 힐링
뉴욕에 전시 보러 갈래?
그래 가자!
애들은 아빠들한테 맡기고 2박 3일로 아줌마 친구들과 뉴욕으로 향했다. 우린 지난번에 파리도 다녀왔었지 않은가? 파리 시내를 운전하고 쏘다닌 우리가 미국땅 뉴욕은 우습게 다녀올 수 있다. (파리 여행기를 글로 남겨야 하고 있는데 못쓰고 있다. 우선 최근 거부터 쓰자)
나와 함께 동행한 이들은 사실 길병신인 나를 인도해 주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이 없다면 나는 미술관과 호텔만 왔다 갔다 하고 끝냈을 여행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근처 값싼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정도가 내게는 여행인데 이들과 함께 가면 내 여행이 풍성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혼자 어지간히 쏘다닌 녀석은 어딜 가야 하는지 거기에 뭐가 있는지 훤히 꿰고 있고 또 다른 녀석은 전화기 하나로 온갖 정보를 잘 찾으니 나는 그들이 가자는 곳에 가고 먹자는 곳에서 먹으면 된다. 그들과 내가 보고 싶은 전시를 함께 보면 그냥 나의 여행은 완벽해지는 것이다.
뉴욕에서 무얼 할까?
사실 우린 그 어떤 계획도 없이 뉴욕에 도착했다. 너무 바쁘게 일을 하고 주말에 틈을 내서 간 여행이기에 짜임새 있는 스케줄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친구는 도착과 동시에 어디로 향할지 정해준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우리는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뉴욕의 랜드마크 Vessel로 향했다. 꽃병처럼 생긴듯한데 또 벌집처럼도 생겼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대도시가 지닌 에너지가 있지 않은가? 물밀듯이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뉴욕의 한복판을 쏘다닌다. 그 전날은 뉴욕 Knicks가 보스턴 Celtics에 승리를 했던 날이고 도시는 그 어느 때보다 한껏 들떠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농구경기장을 지나갈 때 방송국 카메라와 어딘가 매우 익숙한 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뉴욕 Knicks의 모자를 쓰고 인터뷰 중이었다.
이 사람... 농구 쪽 관계자인가? 유명한 사람인가?
인터뷰 중인 그의 사진을 찍어 농구 마니아인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자 남편이 답을 한다.
뉴욕 시장이야...
어디서 많이 눈에 익었다 했더니 뉴스에서 자주 뵌 분인 것이다.
그를 뒤로하고 메이시 백화점 안 꽃장식을 구경하고 또 걷고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뉴욕 도착 3시간 만에 12430보를 걸었다는 사실에 우린 빵 터지고 말았다. 뭐에 홀린사람마냥 걷기 시작한 우리는 훈련 같은 여행을 선호한다. 느긋하고 천천히 즐기는 여행은어울리지 않는다. 에너지가 바닥날 때까지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돌아다니는 게 우리 스타일이다.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숙소로 돌아오니 작고 아담한 방 침대 두 개가 우리를 반긴다. 최소한의 경비를 들여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뽑아내야 아줌마들답지 않겠는가? 우리는 코딱지만 한 호텔방에서 널브러진 체 지난번 파리 여행 때보다 숙소가 더 좋다며 대만족을 했다.
사실 한 사람이라도 불만을 터트렸다면 함께 다니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갑작스럽게 계획이 변경될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맞닥뜨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게 셋다 비슷한 성격에다가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인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함께 다닐 수 있다.
침대에서 뒹글거리다 뉴스를 켰더니 아까 뵌 그 뉴욕 시장님이 텔레비전에 나온다. 이번에는 NYPD 모자를 쓰고 브루클린 다리에 멕시코 배가 부딪힌 사건을 라이브로 브리핑하고 있다. 우리가 12430보를 걷는 동안 그 역시도 열심히 뉴욕을 돌아다니며 당신의 역할을 열심히 하신 듯하다. 기쁜 소식과 맘 아픈 사고를 한 사람이 순식간에 전환하며 인터뷰하는 모습이 매우 생소하게 느껴진다.
다음날 아침 우린 유명하다는 커피집에 들러 커피를 오더 했다. 푸에르토리코 커피라는데 코코넛도 들어가고 시나몬도 들어간다. 블랙커피만 마시는 내가 이런 낯설고 단 커피를 아침부터 마신다. 익숙지 않은 장소에서 익숙지 않은 맛을 먹고 마시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의 즐거움이자 추억 만들기에 아니겠나?
지하철을 타고 아점으로 차이나타운에서 딤섬을 먹고 걷다 보니 모마까지 왔다. (원래 계획은 지하철을 타는 것이었지만 퍼레이드가 있어서 지하철 입구를 막아놨고 결국 걷게 되었다.) 모마에서 그림을 보고 집에 놔두고온 아른거리는 아이들의 선물을 샀다. 비록 엄마들이 너네들 아빠한테 맡겨 놓고 놀고 있다만 마음만큼은 함께 있다는 성의 표시다.
오후 3시쯤이 되자 요즘 제일 핫하다는 뮤지컬 MJ를 보러 극장으로 향했다.
마이클 잭슨.... 유명 팝스타지만 기괴하게 느껴졌던 그의 삶을 뮤지컬로 만든 거라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는데 점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마이클잭슨 뮤지컬을 보면서 우는 게 말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말이 되더라.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한없이 외로운 마이클
그런 마이클 등에 빨대 꽂는 형제들
아들에게 인색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아티스트로서의 고민과 고뇌
잘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두려움
최고의 공연을 보이고 싶은 욕심
지혜롭지 못한 소비습관
이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마이클을 옥죄고 결국 마약에 의존하게 만든다. 전반적인 뮤지컬은 춤과 음악으로 가득하다. 정말 말 그대로 미친 춤이다. 화려한 조명, 흔들림 없는 노래 그리고 미친 춤이 너무 완벽하게 들어맞아 눈과 귀가 호강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마이클잭슨의 유년시기로 돌아갈 때면 무대에서 연기자의 목소리 톤이 바뀌고 캐릭터가 바뀌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그 순간을 조명과 음악과 연기실력으로 틈새 없이 메꿔버린다.
어떻게 이 장면을 이렇게 할 생각을 했지? 정말 놀라운데?라는 생각을 반복하고 반복하게 만드는 뮤지컬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두 손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마이클잭슨 뮤지컬에 이렇게 감동할 줄 누가 알았겠나.
아줌마 세명 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를 지르고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뉴욕 여행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극찬을 했다. 나중에 또 뉴욕에 오면 우리 남편들도 애들도 데리고 꼭 MJ musical 보자는 말도 했다.
타임스퀘어를 뚫고 또 무작정 걷기 시작한 우린 둘째 날 22508보를 걷고 하루를 마감했다.
그리고 마지막날, 우린 여행의 목적인 위트니 뮤지엄을 방문했다. (나를 봐줘요라는 글로 전시 리뷰를 적었다) 첼시 마켓에 들려 점심을 먹고 뉴욕 여행 디브리핑에 들어간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뉴욕에서 뭐가 좋았는지 이 여행이 우리에겐 어떤 의미였는지 말이다.
우린 그런 쉼이 필요했던 것 같다.
돈 버느라 애 키우느라 죽겠다 싶은 피곤함에도 우린 단 한 번도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대충 살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이번 뉴욕은 힐링이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삶을 꾸려나가는 우리 아줌마들을 위한 등 토닥이며 잘했어 잘했어하는 그런 힐링 말이다.
또 돈을 열심히 벌고 애를 키우다가 어디로 가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그때도 당신들이랑 가고 싶다. 내가 가자고 하면 그래 가자!로 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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