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여성을 자궁으로만 보지 않는다

난임을 겪고있는 당신에게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당신에게

by MamaZ

결혼하고 10년 동안 우린 아이가 없었다. 목사 부부가 아이가 없다는 건 성도들에게는 기도 제목이자 가십거리이기도 하다. 물론 그 10년의 시간 동안 나와 남편은 우리 인생에서 책임져야 하는 모든 것들을 했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나는 작은 대학의 강사가 되고 전시도 종종 하는 작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남편 역시 신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따고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했으니 그 10년은 오롯이 우리의 인생의 기반을 잡는데 올인을 했던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우린 너무 가난한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임신을 계획하고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이었다.


하지만, 성도들은 관심 없다. 그들은 왜 아이를 빨리 낳고 기르지 않는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마치 내가 낳기라도 하면 키워줄 것처럼 관심이 과했다. 도대체 피임을 어떻게 하길래 그렇게 애가 안 생기냐는 질문을 받던 날 나는 내 섹스 라이프까지 당신한테 나눠야 하냐는 말과 욕이라도 차마 입 밖으로 나올까 분한 감정을 꾹꾹 누르며 웃어넘겨야 했다.


내게 아이를 낳지 않는 건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는 나쁜 죄라며 내게 "사모님 지금 죄짓고 있는 거 아세요?"라고 말했던 그 성도는 내 임신 소식을 듣고 뽐내듯 당신이 열심히 기도해서 내가 임신을 한 거라 했다. 마치 난임 치료 은사를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듯 뽐내는 그녀에게 감사라도 해야지 그녀가 만족할 것 같았다. 성도님이 주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거죠라고 말하고 싶어 주둥이가 근질거렸지만 어쩌나... 그럴 수 없다. 난 목사 사모잖아. 조신하게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10년 만에 아이를 낳고 나니 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 맞았다. 아이가 있음으로 인생에서 전혀 모르던 세상을 만나게 되고 감격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과 부모가 된다는 것은 평생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이다. 나는 10년 만에 엄마가 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자아를 수시로 죽이며 아이를 선택해야 하는 발란스 게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순간에 어떤 결정에서 나는 1순위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희생 없이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아이가 없어서 너무 고통스러워했던 한 목회자 부부를 알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아이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너무 솔직하게 나눠줬기에 우린 함께 울었고 나와 내 아이는 그녀에게 희망이 되었다. 나만큼 마음이 힘들었을 테고 나만큼 성도들에게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했을 그녀에게 깊은 동지애를 느꼈기에 나는 그녀의 임신을 위해 오랜 시간 함께 기도를 하였다. 그런 그녀가 아주 힘들게 아이를 갖고 엄마가 되었을 때 마치 한나가 사무엘을 갖게 되어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던 순간처럼 나는 깊은 감사와 눈물을 흘렸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아이를 갖는 것보다 키우는 일이 수천 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임신은 발달된 난임치료가 임신의 확률을 높여주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발달된 과학의 힘을 빌려 제대로 된 인간으로 키울 수 있는 확률을 높여주진 않는다.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것은 부모의 노력과 사랑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경에는 아이가 없어서 힘들어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라와 라헬이 그랬고 한나가 그랬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와 바람은 아이를 잉태하는 축복을 얻었지만,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했던 인생이었다. 그렇다면 아이가 없던 여자들은 불행했을까? 성경에는 아이가 없었던 여자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에스더, 디보라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마르다의 이야기다. 성경은 그녀들이 훌륭한 엄마로 묘사하지 않고 훌륭한 여자 리더들로 묘사한다. 그녀들에게 아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우린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성경은 그녀들의 인생을 엄마로서 표현하지 않았다. 성경 속 그녀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충성된 리더로서의 역할을 더 깊이 다뤘다. 그것은 성경이 여자에게 임신과 양육을 강요한 적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많이 사랑하는 지인이 임신을 하지 못해서 많은 고민과 아픔을 겪고 있다. 인공수정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그녀에게 네 동생은 임신이 잘되던데 왜 너는 안되냐는 말을 던진다. 마치 인형가게에서 인형을 구입하는 것처럼 매주 그녀는 다른 누군가에게 임신 아직이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결국 다니던 교회 공동체를 떠나고 말았다.


천국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네가 아이를 몇이나 낳았냐로 천국문빗장을 여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친절했느냐 사랑했느냐 희생했느냐를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엄마로 부르셨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어린양들에게 필요한 어른으로 부르셨을 수도 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을 좋은 어른으로 부르셨다면 당신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마르다처럼 에스더처럼 미리암처럼 데보라처럼 하나님의 어린양을 이끌고 보호하는 인물로 성장하길 바라실지도 모른다. 그건 부모가 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아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좋은 어른도 있어야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너무 기다리고 있다면...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마음이 아린건 난 당신의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의 오랜 기다림이 길고 힘들고 험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도 나는 당신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 한나가 소리 내어 기도조차 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지만 그녀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그 기도 속에 하나님의 따듯한 이끄심을 경험할 것이다.


#좋은어른이만드는아이들의세상

#아이들에겐좋은어른이부모만큼필요하다

#내임신을네가왜궁금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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