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정리

당신이 바라던 대로 글을 씁니다.

천국에서도 산책 중이겠지요

by MamaZ

나의 노교수는 자식들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는 나에게 좋은 어른이었지만 자식들과의 관계는 매우 소원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왜 그가 자식들과 사이가 멀어졌는지 알 수 없었고 단 한 번도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우리는 매우 친했고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도 서슴없이 나누는 사이였지만 자식의 관한 얘기는 내가 물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여겼다. 자식과의 관계는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오해가 있었을 것이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큰 돌덩어리 같은 무거움이라 짐작했다.


교수님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인생은 고기서 고기라 여기는 나와는 영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함께 레스토랑에 가면 나는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을 꼭 시키고 그는 콩으로 만든 수프와 빵 혹은 샐러드 같은 것을 시켰다. 그걸로 배가 불러요?라고 물으면 콩이 얼마나 좋은 단백질인지 채식이 몸에 얼마나 좋은지를 한참 설명하시곤 했다.


언젠가 그에게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가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딸아이 숙제를 도와주다가 고기로 사용되기 위해 소와 돼지가 도축되는 영상을 본 적 있는데 그때 "이제까지 무얼 먹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스테이크와 와인을 즐겼던 그가 그 영상을 끝으로 단 한 번도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며 지금도 그 영상이 너무 선명하다고 했다. 소와 돼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던 장면을 설명할 땐 그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는 동물을 사랑했다.

내가 결혼하고 처음 키웠던 나폴레옹 (말티스 강아지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을 처음 만난 날 교수님은 이렇게 예쁜 건 처음 본다며 한참을 안고 계셨고 나초 (나와 17년째 함께하고 있는 노견이다. 닥스훈트와 치와와가 섞여있어 묘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를 만난 날은 이렇게 귀여운 건 처음 본다고 했다.


점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던 교수님의 노년에 그는 동물보호소에서 푸들과 말티스가 섞인 하얀 개를 입양했다. 녀석을 데리고 온 날 그는 내게 이메일과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주차장 바닥에 어색한 자세로 앉아 새로 입양한 녀석을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녀석의 이름은 보보라 했다.


나의 노교수는 정성 들여 녀석의 끼니를 챙겼다. 올게닉 블루베리와 온갖 야채를 정성스레 잘라서 사료와 잘 섞어 먹이는 게 그의 하루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었고 나는 우스갯소리로 얘가 나보다 더 건강하게 잘 먹는다는 말까지 했었다. 그렇게 잘 먹인 보보는 잘 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컸다.

얘가 진짜 말티푸라고? 왜 이렇게 크지?

몇 달에 한 번씩 보보를 볼 때마다 나는 놀랐다.


교수님의 정성을 쑥쑥 먹고 자란 보보는 점점 커졌고 힘도 좋아졌고 혈기도 왕성했고 툭하면 내 팔과 다리에 붕가붕가를 하려 했다. 그럴 때면 노교수는 녀석에게 큰 소리를 냈지만 내 딸아이에게 달려들 때는 정말 무섭게 녀석을 끌고 가 혼내기도 했다. 보보의 혈기왕성함은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고 당황스러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그리고 녀석의 존재는 교수님의 삶에 "생기"라는 걸 불어넣는 존재가 되었다. 녀석 때문에 교수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을 해야 했고 정성스러운 끼니를 챙겨주는 일은 사랑과 정성을 나누는 일이었다. 매우 극 소수의 대상에게만 마음을 나눴던 그에게 이런 일상은 그를 많이 말랑말랑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요일 아침 분주하게 교회 갈 준비를 하던 내게 그가 전화를 했다.

what's up Joe~라고 전화를 받자 저쪽에서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보가 죽었어. 오늘 새벽에 죽었어.


나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듣기만 했고 흐느끼며 울던 그는 내게 바쁠 텐데 어서 가보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한가.


정성으로 키우던 반려견을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교수님은 운명처럼 위니라는 녀석을 입양했다. 동물보호소에 버려진 새끼 강아지로 소개된 녀석을 보는 순간 그는 사랑에 빠졌고 녀석을 집에 데려와 똑같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애견샾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해다가 펜스를 만들고 녀석이 포근하게 잠들 수 있는 침대와 장난감을 구입하고 엉망이었던 털을 씻기고 미용까지 맡겼다. 다시 그의 삶에 생기가 불어넣어 진 것 같았고 너무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교수님은 올해 2월에 그의 아내와 위니 곁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생명 옆에서 말이다.


IMG_3286.jpeg


며칠 전 그의 아내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자 그녀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나도 기억 못 하는 내 딸아이의 그림이었다. 6년 전 즘 그렸을까 싶은 딸아이의 그림을 교수님 유품을 정리하며 찾았다고 했다. 딸아이의 그림에는 어깨가 굽은 교수님이 보보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어깨 굽은 게 진짜 Joe의 모습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저 셔츠도 정확히 어떤 건지 안다는 말을 했다.

잘 지내냐는 나의 질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너무 생각이 나고 때로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가 너무 큰 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직 엄마가 그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딸아이는 내게 엉클 조에게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동네 극단에서 하는 어린이 뮤지컬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 딸아이는 자기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자랑하는 문자를 보내라고 한다. 내 딸아이에게 교수님은 자기 자랑을 잔뜩 늘어놓아도 되는 할아버지 같은 존재였으니까.


이제 돌아가셔서 문자 못 보잖아.

엄마, 그래도 천국에서 볼 수 있어.


딸아이의 말에 나는 눈물을 글썽인다.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나는 그와 공유했었다. 문자와 전화 이메일로 또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20년을 넘게 삶을 나누고 우정을 나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빈자리를 매번 아주 크게 느끼고 있다.


남편에게 교수님의 아내가 보내준 그림을 보여주자 남편이 말했다.

지금 천국에서 딱 이 모습으로 계실 것 같아.


이제 5개월 된 그의 빈자리는 매우 자주 내게 먹먹함이 되어 돌아온다.

나도 이런데 그의 아내는 어떨까?

올해가 가기 전에 그녀를 찾아가야겠다. Joe에 대한 서로의 마음과 추억을 나누면 이 먹먹함과 아린 마음도 조금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가 그리울 때마다 나는 글을 쓰게 된다.

작품을 만들면서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유언처럼 매번 그가 그리울 땐 그를 그리워하는 글을 쓴다. 당신이 바라던 대로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흐릿한 당신에게 베푼 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