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나도 곧 흐릿해지겠죠
티칭을 하는 17년 동안 나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을 주로 상대했다. 그들에게서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 같은 게 있었다.
병원에서 일한 지난 3년 동안 나는 70에서 90대의 노인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았다.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 맞닥드린 노년층과의 만남이었다. 물론 사모의 삶을 살 때도 노인은 많이 만났지만 나는 그들을 거의 피해 다니거나 마주해도 가벼운 인사 정도였다.
피하거나 가벼운 인사로 충분했던 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건 20대 청년들을 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 노동이다. 그들은 우선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이해력이 떨어지며 버럭 하거나 변덕을 부리며 돈에 민감하다. 그리고 급하다. 그들이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
나는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하듯 간단명료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화를 내거나 변덕을 부리면 참고받아주기도 하지만 선을 넘으면 단호하게 말하는 법도 터득했다. 시장에서 흥정하듯이 내게 가격을 무조건 깎아달라고 떼를 부리면 어린아이를 다루듯 어르고 달래야 할 때도 있다.
노인들에겐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무엇으로 이 약하고 아픈 몸을 지탱하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매우 성큼 다가온 실체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 89세의 할아버지는 정말 89세일까 싶을 정도로 건강하고 정신도 맑다. 그런 그가 그의 친구 안부를 물었다.
"혹시 황 아무개 할아버지는 종종 와?"
"아니요~ 못 뵌 지 오래됐어요"
"아프다고 하던데 치과도 못 오나 보네"
6개월마다 클리닝을 하러 오는 그들을 마주할 때면 더 깊은 주름과 피곤함이 겹겹이 쌓인 얼굴로 병원을 찾는다. 노년에 시간에는 시간의 흐름처럼 노화도 빨리 진행되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맑았던 눈이 흐리멍덩해지기도 하고 기운이 넘쳤던 목소리도 힘이 빠져있다. 생명이 흐릿해진다고 해야 할까? 한때 선명했던 그들의 삶이 흐릿해지고 옅어지는 게 보인다.
나는 오늘 영어도 못하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하고 무언가 모자라고 답답하며 불안에 가득 찬 한 할머니를 상대해야 했다.
그녀를 데려다줬던 또 다른 노인은 가버렸고 그녀 혼자 병원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녀가 볼일을 다 보자 혼자서 버스를 타고 노인아파트로 가겠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버스를 세 번은 갈아타아하는데 도저히 84세 할머니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녀는 명료함도 총기 있는 눈빛도 없고 딱 이용해 먹기 좋아 보이는 순진한 얼굴로 병원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택시를 잡아주려 했지만 이미 그 운전기사 할아버지에게 돈을 줬기에 자기는 또 돈을 내고 택시를 잡을 수 없다며 버스를 타겠다는 고집을 부린다.
저런 행색으로 저런 흐릿함으로 노인아파트까지 그녀가 갈 수 있을까? 딱 강도 맞기 쉬울 것 같은 그녀를 도저히 그렇게 보낼 수가 없어서 우버를 불러드렸다. 나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벤츠 우버 택시가 왔다. 내 사비를 써서 그녀를 태웠고 운전기사에게 할머니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도 드렸다.
그녀도 내 나이 때는 나처럼 삶이 선명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도 하고 좋은 소리도 하고 남편이랑 지지고 볶으며 선명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고 혼자가 되고 주변에 아무도 당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된 그 시기에 아마도 당신의 삶은 흐릿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선명한 내가 흐릿한 당신에게 베풀고 싶었다.
언젠가 내 삶도 흐릿해질 것이다. 그러면 선명한 누군가가 흐릿한 나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줬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내가 한 선행이 하나의 토큰이 되어서 나중에 흐릿한 내가 선명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사용되길 바라는 어쩌면, 내가 미리 쌓아둔 희망의 저금통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늙는다는건불안인가
#삶은원래불안덩어리
#선행도저축이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