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지 못했던 사랑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다. 아니, 있었다. 과거형이다.
나는 매우 그녀에게 진심이었고 그녀 역시 나에게 진심이었다는 건 의심하지 않는다. 우린 힘든 유학생활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울고 웃고를 함께하였다. 서로의 전 남자 친구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줄줄이 꿰고 있었고 서로의 가족 행사에 참석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비록 거리는 좀 떨어져 있었지만 우린 일 년에 한두 번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꼭 만나는 사이였고 안부 전화는 매일 저녁에 해야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는 스케줄이었다.
그런 관계가 30년을 찍을 즈음 그녀와 나는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친했던 우린 어쩌다 이렇게 서로에게 소원해졌을까?
그 친구와의 관계를 떠올렸던건 며칠 전 딸아이랑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 C 엄마랑 집 앞에서 나눈 이야기 때문이다. 아이들 때문에 우린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는데 그게 벌써 5년이다. 인생 최고의 친구라 여기는 둘의 소소한 우정 이야기를 나누며 부모로서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내게 이 둘이 잘 지내는 이유를 C에게 물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C는 우린 서로에게 질투를 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해 주기 때문에 사이가 가장 좋다고 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서로에게 참 예의 바르게 군다. 기분 나쁜 말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네가 입은 옷 너무 예쁜데? 네가 입은 옷도 매우 예뻐!" 라며 이렇게 서로를 치켜세운다. 서로의 관심사는 다르고 재능도 매우 다르다는 걸 이 둘은 알고 있고 그걸 인정해 버린다. 예를 들면 내 딸아이는 엄마 닮아 몸치고 길치지만 C는 길눈 밝고 춤과 운동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아이다. 내 딸아이는 노래와 연기를 잘하고 C는 그런 친구를 자랑스러워한다. 내 딸아이도 C의 끝내주는 춤실력에 엄지 척하며 녀석의 공연을 빼먹지 않고 보러 간다.
녀석들은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고 인정해 준다. 상대가 나보다 못하는 것에 대해서 비아냥거리거나 잘난 척하지 않고 "다름"으로 여긴다. 그 다름을 인정해 버린 둘은 그래서 서로가 편한 것이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관계에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은 다르다. 우리 모두 다르다. 그 다름이 질투가 되고 시기가 될 때 틀어진다. 쟤는 저걸 잘하고 나는 이걸 잘한다면 그걸 인정해 주고 서로의 장점을 칭찬해 주며 이끌어주면 관계는 건강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날 저녁 나도 딸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C랑 가장 친하냐고. 그러자 딸아이가 말했다. 웃기잖아. 그렇다. 둘은 웃음 코드가 잘 맞는다. 하지만, 다시 묻자 진지하게 딸아이가 말했다.
"난 내 삶이 좋아 엄마. 내 삶이 충분히 괜찮은데 얘도 충분히 자기 삶이 괜찮거든? 그러니까 서로 편한 거야".
내 삶이 충분히 괜찮고 네 삶도 충분히 괜찮다. 충분히 자기 삶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기에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질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30년을 울고 웃었던 그녀와 내가 멀어진 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건강하게 인정했다면 우린 괜찮지 않았을까?
망설임이 별로 없는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결정하는 것도 큰 고민 없이 할 수 있던 선택이었다. 나는 한우물을 끈질기게 팠고 자리를 잡았다. 가난한 목회자와 결혼을 사역을 20년 했던 것도 나의 선택이었기에 그 어떤 징징거림도 내뱉지 않았던 나다.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돈이 없었지만 그건 내가 내린 결정이니까 힘들어도 가야 했다.
아직도 학교에서 가르치니?
작업도 하고?
언제까지 할 거야?
언젠가부터 그녀는 내게 이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이룬 것들이 그저 운이 좋아서 얻어낸거라 생각하는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난 그녀 인생의 크고 굵직한 결정을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내 노력과 열정은 그녀의 눈에 보이긴 했을까? 왜 그녀는 나와 자신을 그렇게 비교해야만 했을까?
난 그녀가 직장을 그렇게 그만둔 게 싫었다.
난 그녀가 그 남자를 택한 것도 싫었다.
난 그녀의 시댁이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그녀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게 싫었다.
난 그녀가 더 나은 직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남자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시부모는 그녀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결정과 실수를 하기 시작한 건 다 그 멍청한 남자를 만나서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게 욕심이 많다고 했고 만족을 모르고 감사할줄 모른다고 했다. 그럼 난 질세라 내 생각들을 서슴지 않고 거르지 않고 그녀에게 퍼부었다.
왜 넌 저지르기만 하는데?
왜 넌 끝까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데?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잘되길 너무나 바랬지만 그녀에게 친절하진 않았다. 그녀에게 갖춰야 할 친절과 배려는 내팽개치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닦달을 했다.
카톡에서 그녀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자 나는분노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나도 형편 힘든데 네가 힘들다고 해서 비행기표까지 사줬어 내가! 그뿐이야? 널 위해 얼마나 기도를 했었는데 너 방황할 때 우리 집까지 내어주며 살았는데!
나쁜 년.
딸아이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그녀를 생각했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카톡에서 지워졌고 나는 한동안 분노했지만, 그때의 그 분노가 사라지자 마음이 애리다.
그때 내가 그녀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를 했다면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들고 인정했다면...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나는 응원한다고 했다면 우린 지금까지 종종 연락을 주고받진 않았을까?
너무나 고집스럽게도 나는 지금도 그때 내가 뱉었던 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더 좋은 남자를 만났어야 했다고 믿고 있고 좀 더 참고 기다렸으면 더 좋은 직장의 기회가 주어졌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난 친절했어야 했다.
아마도 우린 다시 서로를 찾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그녀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의 나는 정말 너를 사랑했었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그리도 지금 나는, 내 딸 아이와 그 친구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친절도 함께 건네야 한다는걸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