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정리

텀블러는 멀쩡하고 내 무릎만 나갔다

사소한 사고가 가져다준 크고 느릿한 깨달음

by MamaZ

지난주 아침 막 주차하고 병원문으로 향하다가 내 바지에 발이 걸려 그냥 넘어지고 말았다. 한 손에는 뜨거운 커피가 담겨있는 텀블러 한 손에는 스텐리 물병을 잡고 있었는데 넘어지는 순간 이 생각이 스친 거다.


"텀블러와 스텐리 물병을 떨어뜨리면 페인트 벗겨지고 찌그러지니까 내 무릎을 희생시키고 물병과 커피머그는 완전 꼭 잡자!"


그리하여 나의 물병과 텀블러는 스크래치 하나 나지 않았고 내 무릎만 살점이 나갔다. 사실 떨어뜨리고 손으로 땅을 짚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무릎이 이 정도로 나가진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제대로 살이 벗겨졌는데 특히 오른쪽이 좀 심하게 살이 벗겨졌다. 무릎은 계속 움직이니까 딱지가 앉을 틈을 안 주는지 나설 기미가 안 보인다. 게다가 요가까지 했더니 상처가 곪아 버렸다 ㅡ.ㅡ 요가바지 무릎 쪽으로 고름이 새어 나오는데 내가 미쳤구나 싶어서 당분간 괜찮아질 때까지 요가는 쉬기로 했다.


넘어진 게 뭐 자랑이라고 이렇게 쓰나 싶다. 그런데 넘어져보니까 쓰라려보니까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생활의 루틴들이 매우 불편해짐을 느낀다. 샤워를 하면 매번 따갑고 쓰라리고 요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자세들이 나오지 않는다. 자다가 무릎을 구부리기라도 하면 살이 갈라지는 느낌이 나고 바지가 스치면 쓰라리다. 아주 작은 상처도 내 몸은 반응을 하는 것이다.




병원에 좀 힘든? 어르신이 한 분 오시는데 정말 환장하게 자기 마음대로인 할머니다. 예를 들어 자기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선생님이 오질 않으면 선생님 있는 방에 가서 언제 오냐고 묻는다거나 우리 스태프들한테 잔소리를 하고 이것저것 다 참견하신다. 전화를 4번 5번 연속으로 해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거나 전혀 관련 없는 질문을 하며 집요하게 원하시는 대답을 유도한다. 게다가 자신이 가장 먼저 의자에 앉아야 하고 의사도 봐야 한다고 하시니 내 입장에선 너무 벅찬 거다.


그런 그 어른을 상대하는 게 너무 싫었던 나는 매우 사무적으로 그녀를 대했는데 또 매우 마음이 여리셔서 언젠가는 내게 돈봉투를 주시며 점심을 사 먹으라 했다. 노인네 상대하느냐 고생이 많다며.... 물론 받지 않았지만 그녀의 그런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태도와 성격은 내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와 긍정의 힘을 많이 소진하게 만들었던 건 사실이다.


어느 날 그녀의 발신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한숨 크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받았는데 그녀의 남편이다.


"우리 아내가 심장마비가 왔어요. 지금 2주째 의식이 없어요. 목구멍에 배에 호스를 뚫고 넣은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어요. 치과 병원 예약한 거 다 취소해 주시고요 임플란트 나머지 돈은 그냥 안 받으시면 안 될까요?"


점잖은 남편은 풀이 다 죽고 갈라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난 뭐라고 말해야 이 분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2주째 의식이 없다는데 호스를 꼽고 있다는데 괜찮아지실 거어요라고 말하기엔 내 언어는 너무 값싼 위로다.


네 알겠습니다. 상태가 호전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을 짧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참 건강해 보였던 어르신인데....

늙는다는 건 언제 어떻게 아파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일까?


노인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다가도 그들을 향한 어쩔 수 없는 안쓰러움도 함께 느낀다. 나 역시 언젠가는 저들의 위치에 있을 것이고 내 몸도 저들의 몸처럼 연약 해질 테니.... 그때는 이깟 무릎의 쓰라림으로 징징거리지도 못할 만큼 아픈 곳이 많아질 것이고 내 정신과 감정은 그만큼 날카로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은 내가 가보지 않고 경험해보지 않은 그들의 삶을 매번 내 것에 투영해 보자 지금 현재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즐기고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매번 이른다. 삶은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며 시간은 내 손끝에 잡힐 듯 말 듯 날 놀린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이 순간 매번 행복하고 감사하기 위해 내 태도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감사할 것이 많다는 걸 선택할 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진다.


지금을 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감사하며 만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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