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ste of Warmth, A Taste of Peace
8월이 되자 가을느낌이 물씬 난다. 반팔을 입으면 긴바지를 반바지를 입으면 위에는 긴팔을 입어야 하는 언발란스한 날씨가 온 것이다.
지난 월요일 내가 무얼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간이 어떻게 스쳐 지나가는지 모르겠을 만큼 정신을 빼놓고 살았나 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지난 월요일에 내가 무얼 했는지 전혀 기억을 할 수가 없다. 마치 지난주 월요일에는 내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엊그제 폴란드인 친구집에 갔다. 친구는 내게 이거 한 번 먹어보겠냐며 폴란드 사람들이 일요일이면 만들어 먹는 치킨 수프라며 내게 건넸다. 노란 맑은 국물에 야채와 닭고기 그리고 국수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치킨누들수프 같은 것이다. 이미 저녁을 먹어서 배가 불렀지만, 워낙에 음식을 맛있게 하는 그녀의 수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원래 맛있는 건 배가 불러도 먹을 수 있으니까.
국물을 살짝 맛보는데 짜지도 않고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데 속이 따뜻해진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아이 등교 시키고 출퇴근하면서 중간 짬을 내서 다시 학교 강의를 시작한 내 일상에 이렇게 속이 따뜻해지는 국물은 왠지 힐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고기와 국수와 야채를 다 건져먹고 나중에는 두 손으로 그릇을 붙들고 국물까지 마셨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폴란드 친구는 좋아라 한다.
"나 네가 만든 수프 한 그릇에 힐링받는 것 같아!"
어제는 그녀가 만들어준 "폴란드 선데이 수프"를 만들기 위해 장을 보았다. 닭다리만 한가득 들어있는데 5불밖에 안 한다. 이만큼의 닭다리면 충분히 국물을 우려낼 수 있지 않을까? 닭다리를 담고 셀러리와 당근을 샀다. 친구가 알려준 폴리쉬 시즈닝은 폴란드 전용 마트에만 파니까 그곳에 가서 점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시즈닝과 에그누들을 구입한다. 패키지의 그림과 글씨는 내게 너무 낯설다. 그들의 언어는 내가 읽을 수 조차 없으니 있다가 궁금하게 있으면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야겠다.
그녀가 하라는 대로 나는 닭다리를 큰 냄비에 넣고 셀러리와 당근을 썰어서 넣고 양파 한 덩어리를 넣고 찬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친구는 맑은 국물을 만들기 위해선 국자를 따듯하게 데워서 지저분한 건더기를 건져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푹 끓이고 시즈닝을 넣고 다시 끓인다. 폴란드산 시즈닝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감상 말린 허브와 야채 그리고 소금을 섞어 만든 듯하다. 시즈닝 때문인지 닭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투명했던 물이 나름의 수프다운 색을 갖췄다. 이제 다시 다른 냄비에 물을 넣고 소금을 넣고 애그 누들을 넣는다.
과연 나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음식과 살림은 가장 나의 연약한 부분인데 이 수프만큼은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한 오빠가 저녁 먹으러 왔을 때 한 그릇 떠서 먹어보라 했다. 물론 나는 오빠를 실험대상으로 생각하고 준건 아니었다. 다만 오빠는 늘 다 맛있다고 하니까.... 왠지 오빠가 맛있다고 하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다. 역시 오빠가 맛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남편이 말했던 것처럼 오빠 역시도 힐링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다. 이 닭고기 수프가 어딘가 위로가 되는 맛을 낸다. 진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고 그냥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수프인데 이게 위로가 되는 맛을 낸다. 그래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나왔었나 보다.
어느 지점에서 어느 재료가 위로가 되는 걸까? 닭인가 국수인가? 설마 야채? 무엇이 위로가 되는 맛을 내는지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음식 하나로 배가 채워지고 마음이 채워지면 충분한 거다. 그래도 왠지 닭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닭은 뭘 해서 먹어도 맛있기 때문이다.
예상한 것보다 일이 풀리지 않고 있고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오고 가지만 수프 한 그릇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건 사실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