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랑 잘 지내니?
“엄마, 나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해.”
아이는 대화 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사실 내가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그리고 내 육아의 가장 큰 목표는 단 하나다.
‘나 스스로와 잘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
나는 아이가 자기 자신과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왜냐하면 인생은 언제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계획이 어그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쓰러지고 뒹구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럴 때 다시 일어서서 견디고 버티고 시작할 힘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다.
잠깐은 누가 그렇네 이렇네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하며 살아간다.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고 다닌다고 한들 그들이 가십을 퍼트리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학업을 그만두고 가정을 내팽게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남의 시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저러다가 말 것들이 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다루느냐다.
자기 효능감은 바로 그 순간에 발휘된다.
나는 수업 시간마다 그리스의 비너스 상을 통해,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통해,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왜곡된 인물화를 통해 묻는다.
“너는 너랑 친하니?”
“너는 너랑 잘 지내니?”
“너는 너 자신이 좋니?”
강의를 시작한 지 18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 가장 큰 바람은 같다. 예술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우리 사회는 남에게는 너그러우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잔인하라고 가르친다.
남의 실수는 용납하면서, 자신의 실수에는 가차 없다. 마치 완벽해야만 멋지다고 믿는 듯하다.
우리는 그런 ‘완벽한 실장님’ 캐릭터들을 K-드라마 속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나와 잘 지내기가 너무 힘들다.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하면 자기혐오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더 좋아지고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짓밟는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틀릴 수도 있고, 일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다. 완벽할 수 없기에, 우리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자기혐오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기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생이완벽하면픽션이지
#그럴수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