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정리

너는 사랑만 남기고 떠났다

나초에게 보내는 마지막 안녕

by MamaZ

나초가 강아지로서의 모든 기능을 잃은 건 꽤 오래전일이다.


녀석은 언젠가부터 더 이상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소리도 듣지 못했고 잘 보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집에 방문하면 지랄 맞게 짖어대던 성질머리도 사라졌고 장난감을 가져와 놀아달라고 했던 건 까마득한 옛날이다.



녀석은 침대 안에 누워서 하루 종일 잠을 청했고 모든 게 귀찮은 듯했다. 그리고 어느 날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다리에 힘이 스르르 빠지는 듯했고 두 다리를 지탱할 엉덩이 근육은 온데간데없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늘 통통하고 식탐이 넘쳐났던 녀석은 점점 만질 때마다 작아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언젠가부터 뼈가 만져졌다.



딸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저녁 나초는 새집을 탐험하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 걸음은 마치 등 굽은 내 노교수가 집안을 천천히 걷는 모습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초는 우리 앞에서 그렇게 다시 주저앉았다. 남편과 나는 녀석의 시간이 다했음을 감지했다. 딸아이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는 죽음이란 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18년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해 준 강아지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남편은 출장을 가야 했고 우린 5시간이나 걸리는 동생집에 방문해야 했다. 그날따라 아예 음식에 입을 대지 않는 나초를 보며 불안했다. 나초를 혼자 놔두기엔 정말 말 그대로 고독사 할 것 같았기에 녀석을 데리고 동생집으로 갔다. 녀석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고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조금만 견뎌주길... 작별 인사는 꼭 남편이 함께 있을 때 하길 바랐다.


기저귀를 채우고 녀석에게 부드러운 음식을 먹이려 했지만 녀석은 음식을 거부했고 물만 조금 마신다. 모든 게 다 귀찮은 듯했다. 그냥 죽기만을 기다리는듯한 모습에 나는 이기적 이게도 조금만 더 견뎌주길 바랐던 것 같다.


토요일 저녁...


조카와 딸아이에게 요가 자세를 가르쳐주며 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누워있던 나초는 방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 노교수의 모습처럼 목을 길게 빼고 등은 굽은 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이다.


녀석을 들어 올려 발을 만졌다.


발이 차다.


남편은 내게 active dying symptoms라는 리스트를 보내주었고 발이 차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신호라고 쓰여 있었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발은 따뜻했던 나초다. 나는 소리를 질렀고 나초를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전화를 들어 인근 동물병원에 연락을 했다. 미친년처럼 죽어도 집에서 죽어야 하니까 며칠만 더 살려놓을 방법을 찾으라면서...


나초를 품에 안고 딸아이가 어린 시절 제일 좋아했던 미니마우스 이불로 둘러메었다. 조금의 체온도 빠져나가선 안된다. 녀석의 발이 다시 따뜻해져야 한다. 그런데 녀석이 배설물을 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란 걸.


온몸에 녀석의 배설물을 묻힌 채 미니마우스 이불로 녀석을 감싸 품에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딸아이는 울고 그나마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동생이 운전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안락사를 준비할까라고 묻는 여자에게 의사를 불러오라고 했다. 얘가 죽어도 집에 가서 죽어야 하니 며칠만 버티게 해 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숨을 헐떡이는 나초를 본 병원 관계자는 당장 산소 호흡기를 달아야 한다며 데려갔고 의사가 왔다.


의사는 오늘 당장 못 넘길 거라 했다. 넘긴다 한들 차에서 죽을 거라 했다. 안락사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다시 알려준다. 딸아이도 그제야 받아들인 듯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딸아이는 외삼촌한테 안겨서 울고 얼굴에 피어싱을 한 여자는 내게 안락사 페이퍼를 내민다.


시체를 집에 데려갈 경우 얼마, 공동 화장을 할 경우 얼마, 애쉬를 돌려받길 원할경우 얼마..... 그리고 코와 발 프린트를 할지 안 할지 묻는다. 녀석의 코와 발을 프린트하길 원하냐는 질문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사인을 했는지 돈을 어떻게 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시간은 흘렀고 안락사 주사를 맞기 전에 녀석은 똑같이 미니마우스 담요에 감싼 채 마지막 인사를 하러 방에 들어왔다.


녀석은 내 품에 안겼고 끙끙 거리는 소리와 몸을 움직인다. 마치 녀석도 아는 것처럼... 녀석을 꼭 안아줬다. 그리고 3개의 주사를 가져온 여자는 내게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흰색 우유같이 생긴 주사는 고통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이고 클리어 한 액체는 모든 주사액이 잘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용도고 핑크는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나와 딸아이는 나초를 안아주고 사랑했고 고마웠고 미안했다는 말을 반복한 것 같다. 사실 정확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난 미친 사람처럼 울었으니까. 흰 액체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다시 클리어 액체가 들어가고 순간 핑크 액체가 들어갔다.



핑크가 튜브를 타고 들어가는 그 순간에 가장 큰 소리를 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내 나초는 우리를 떠났다.


남편은 딸아이에게 미리 말했었다. 심장이 멈추면, 혼이 떠나면 나초가 나초인데 나초 같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정말 그랬다. 심장이 멈춘 나초는 나초인데 나초 같지 않았다.


죽음이란 게 그런 것임을 처음 본 것이다.



나초를 데리러 온 간호사에게 미니마우스 담요는 꼭 그대로 녀석을 덮어달라고 부탁했다. 딸아이가 제일 좋아했던 미니마우스 이불을 녀석과 함께 같이 가길 바랐다.


그렇게 나초를 보냈다.


집에 와서도 나와 딸아이는 한참 울었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엉클 조가 말이야.... 보보랑 나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엄마, 엉클 조는 보보 되게 뚱뚱하게 만들었는데 나초도 뚱뚱해질까?


그럴지도 모르지.

10년전 딸아이와 나초의 첫 만남...


딸아이는 나초에게 미안한 게 많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떠나면 사랑했던 마음과 미안한 마음만 남는다고 누가 그러더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계속 눈물을 훔치고 있다. 감정을 정리하고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과연 글을 쓴다고 이게 정리가 될까 싶을 정도로 너무 복잡한 마음이다.


집으로 돌아오자 빈 나초의 침대가 보였고 딸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한다. 녀석이 없음을 느낀다.


꾹꾹 참고 있는데 이웃집 레즈비언 커플이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초를 산책했을 때 만났던 이들이다. 우린 서로를 소개했고 나초도 소개했었다. 그들이 가져온 바구니에는 와인과 과자와 초 등을 담은 웰컴 선물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안에 제이드 나무 화분이 있었다.


그 나무를 보자 난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나초가 나무가 되어 날 찾아온 것 같았으니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 화분을 나초라고 이름 짓겠다고 했고 난 그녀들을 안아주며 또 울었다. 그녀들도 울고 나도 운다. 나초라 이름 지은 제이드 나무를 보며 하나님이 내게 위로하시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내가 널 위로한다고로 하시면서 말이다.


우리 가족은 죽음이 있어서 생명을 존귀하고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것임을 나눴다. 삶은 짧기에 사랑 많이 하며 살자는 다짐도 한다.



나초는 늘 우리를 사랑만 해주다가 간 녀석이다.


그런 강아지를 어디서 또 만날 수 있겠나?



너는 사랑만 가득했다.


미안하다 나초야.


난 너한테 미안한 것만 기억나.


보고 싶다 나초야.


나도 사랑했다. 그런데 미안함이 더 앞선다.


미안해.


사랑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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