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정리

김치병 사용 설명서

쓰임이 바뀐다는 것

by MamaZ

며칠 전 다 먹은 김치병을 재활용통에 넣기 위해 설거지를 했다. 목이 넓고 깊은 유리병 안에 거품이 가득한 수세미로 고춧가루와 김치국물을 다 닦아내는데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지금은 재활용통에 넣기 위해 닦지만 예전에는 재떨이로 사용하기 위해 닦아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모르던 내 20대 시절에 나는 잘 씻은 김치병을 재떨이로 사용했었다. 블랙커피와 말보로 라이트가 아침식사였던 그때, 쪼그려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커피를 홀짝이며 내 젊음을 태웠다. 담배를 피우면 커피가 생각났고 커피를 마시면 담배가 생각났던 그 시절, 나는 담배와 커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무한반복 하였다. 그때마다 김치병은 담배와 남은 커피물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되었다. 지금은 생각해 보면 그때 무슨 체력으로 그렇게 담배를 피워댔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담배를 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 만큼 나는 중독되어 있었다.


분명 나는 담배에 중독되어 있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흡연은 나의 외로움과 불안정함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그 안에서 잠시 잠깐의 평안을 찾으려 했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입으로 연기를 내뿜고 그 연기를 바라보면서 외로움과 불안이 그렇게 연소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20대를 그렇게 달랬다. 내 몸을 갉아먹고 태우면서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아낄 줄 몰랐고 사랑할 줄 몰랐다. 아니, 사실 저주했다. 그래서 갉아먹고 태우고 소진시키고 버리려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난 10대 20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한 개도 없다. 좋은 기억이 없으니까.


젊은 거 빼고 아무것도 없는 그 상태.

미래는 불안해 죽겠는데 그렇다고 딱히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무얼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그 20대에 마음이 간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걸까 매번 의심하고, 날 사랑해 줄 운명의 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과 사회에선 어른취급을 하지만, 성인이라고 하기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좋은 직장 가져야 하는 것도 알고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것도 다 아는데 도저히 어디서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알려주는 이도 없다. 실망시키기 싫어서 열심히 하는데 왜 충분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걸까? 갑자기 어른이 돼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방황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나를 다그치는데 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했던 것 같다. 왜 그것밖에 못하지?라는 태도로 내 젊은 시절을 다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요즘 와서야 느낀다. 그때 그거 말고는 더 할 수가 없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그게 최선이었는데 무얼 후회하겠나.


안타깝게도 말이다 인생에는 네비가 없다. 목적지를 찍고 간다고 한들 그 목적지까지 못 갈 수도 있고 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다른 길로 우회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방황은 나쁜 게 아니다. 길을 찾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레슨으로 다가오면 그건 잃은 게 아니라 얻은 거다. 배우는 게 있음 손해본건 없는 거다.


김치병을 잘 닦아 재활용통에 넣었다.

이제 나의 김치병은 더 이상 내 젊음과 불안과 외로움을 오롯이 받아내던 재떨이가 아니다. 병은 똑같지만 용도와 목적이 달라진 것이다. 인생의 시간이 지나면 나를 대하는 방식도 그렇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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