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구하는 믿음
예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그 소경.
주변 사람들은 그를 향해 어쩔 수 없는 재수 없는 인생이라 여겼을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소중히 여김을 당해본적도 없고 그 바닥에 주저앉아 그냥 겨우 버티며 사는 삶을 살았을 그가 예수를 향해 외친다.
"다윗의 후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다윗의 후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다윗의 후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 외침은 그가 할 수 있던 유일하고 절실한 행동이었다.
예수가 묻는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한다.
"선생님, 눈,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예수는 그의 바람대로 눈을 뜨게 하였고 이렇게 말하였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예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를 고쳤으니 감사히 여기며 잘 살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는 소경의 믿음이 그를 낫게 하였다고 하였다.
소경은 믿음만 있을 뿐 스스로를 보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진 않았는데 왜 예수는 그를 향해 그의 믿음이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했을까?
소경은 예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의심도 없이 예수가 지독한 어두움 가운데 빛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께서 날 고칠 수 있으시다면 볼 수 있게 하소서가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눈을 뜨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이 하실 수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죽어가는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는 다급하게 예수를 잡고 "할 수 있다면"이라 했다.
예수는 그 아이를 고쳐줬지만 그의 아버지를 향해 네 믿음으로 고쳤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예수는 "할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할 수 있다면에는 의심이 들어 있지만
할 수 있다에는 확신이 들어있다.
예수가 원하는 믿음은 확신이다.
그것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