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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un 23. 2023

라떼 마시던 라떼

미국에 살면서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시원한 아이스 라떼를 홀짝 거린다.

정신 빠지게 바빴던 지난 며칠 동안 온전히 날 위해 보낸 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내 가정을 위해서 내 새끼를 위해서 쏟아부어야 하는 에너지와 시간은 나로 사는 시간보다 엄마로 아내로 살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속상하거나 안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가족은 꼭 서로가 있어야만 이뤄지는 공동체 아닌가.  그들도 나도 우린 절실하게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희생할 수 있다.  내가 바쁘고 희생하는 만큼 내 가족도 날 위해 참고 기다려주고 희생하고 열심히 살아주고 있기에 우린 인내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야 한숨 돌리고 글을 써본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인가.

난 이 여유로운 시간에 무슨 글을 쓸 것인가?


라테를 마시니 라테 (나때) 이야기나 써보자.


나 때는 말이야~ 라며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을 향해 꼰대라며 "라테는 말이야"라고 한다던데... 옛날 얘기를 지금 꺼내는 나는 지금 꼰대인가 아닌가 아주 잠시 고민을 해본다. 아니다.  난 꼰대가 아니다. 아니, 아니고 싶다. 내가 막 쓰고 싶은 이야기는 처음 내가 미국에 와서 살기 시작했던 그 시절과 너무 달라진 한국인에 대한 시선이다.


언젠가부터 내 수업에 그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수강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건 정말 특이한 이유였다. 내 영어에 스며들어 있는 한국 악센트가 좋다는 Z 세대의 학생들에게서 나는 넷플릭스에 나오는 이민호 드라마 아냐고 슬쩍 물어보는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은 나보다 한국 드라마와 배우들을 더 많이 알았기에 오히려 한 수 배움을 얻었다)

유튜브로 한글을 혼자 배웠다는 학생은 내 이름을 한글로 쓰더니 한글로 자기 이름과 이멜을 적어 보낸다. (그녀의 이름은 Infinity였는데 내게 한글 이름이 "무한"이라며 소개했고 나는 무한도전이 생각나 속으로 너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여름 방학기간 동안 한국에 놀러 와서 나를 만나 백반집에 갔던 학생도 있다. (게장에 밥 비벼먹던 그 학생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내 아이의 백인 친구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우리 집을 돌아다닐 때 배꼽을 잡고 웃다가도 이런 순간들이 너무 낯설다.


요즘 말로 현타라고 하던가?

남편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즘의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질 못하고 있다.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을 정도다. 한국 가수들이 콘서트를 열고 그걸 보겠다고 텐트를 치고 줄을 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직 페스티벌에 한국 가수들이 공연을 하고 웬만한 텔레비전 앱에서는 한국드라마와 영화를 볼 수가 있다. 한인 식당에서 순두부와 설렁탕을 시켜 먹는 외국인들을 보고 심지어 오징어 젓갈에 김을 사다가 햇반을 먹는 이들도 본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김치라는 단어를 보더니 김은 알겠는데 치는 뭐냐고 묻던 이들은 어디 갔는가? (그들은 김치의 김이 성을 말하는 줄 알고 치는 이름이냐고 물었다)


내게 영어란 생존이었다.  여유 있게 과외 붙여가며 배운 영어가 아니라 정말 살아야 해서 배웠던 언어다.  언어적 소질도 없고 내성적인 내가 한국 사람도 없는 곳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걸음마는커녕 뒤집고 기어 다니는 법부터 배우는 일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에 그들이 들어온 것이 아니기에 난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스며들어야 했다. 내가 한국 사람이란게 그 누구에게 관심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남편 역시도 그래야 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의 가정에서 두 개의 언어와 문화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모든 것은 집 안에서만 이뤄져야만 했고 밖에서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속해야만 버틸 수 있던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그것이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더 이상, 나의 백그라운드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려 하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고 알아준다는 것.  그것이 내 아이가 성장하며 가질 큰 혜택이 아닐까.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지만,

이민자로서 라테 (나때)보다 더 나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민자들의 삶은 모든 세대가 어느 시대와 상황에서든 직면해야 하는 어려움이 다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아이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번거로운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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