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정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Z Jun 25. 2023

무엇이 그녀를 춤추게 하는가?

70대 할머니가 추는 발레는 나를 미치게 설레게 했다.

지인의 초청으로 댄스 리사이틀을 다녀왔다.

지인의 아이가 속해있는 댄스팀이었는데 보통 9월에 클래스를 시작해서 6월즘 큰 공연장을 빌려 댄스팀에 속한 모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리사이틀을 하고 한 해를 마무리한다.


정말 아기아기한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댄스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즐기는 축제 같은 분위기다. 반짝이는 무대 의상에 조명과 짙은 화장을 하고 몇 개월 동안 연습했던 춤을 보여주는 자리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다리가 훤하게 보이게끔 퍼진 치마를 입고 발레를 추고 있는 4명 속에 그녀는 다른 이들의 움직임에 비해 조금 더 조심스럽다.  그때 지인이 말한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70대 할머니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모든 세포가 그녀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꽉 조여맨머리는 둥글게 말아 헤어번을 만들었다. 70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곧은 다리와 우아한 손과 발놀림. 그녀는 분명 오랜 시간 춤을 췄을 것이다.


그녀의 꼿꼿함과 우아함에 넋을 잃었고 이내 궁금해진다.


무엇이 그녀를 춤추게 하는가?



학교에서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을 만나지만 치과에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을 만난다.


20대 풋풋하고 예쁘기만 한 녀석들은 40을 훌쩍 넘긴 내게 에너지를 나눠준다.  그 기운이 지금의 나를 좀 더 밝고 긍정적이며 유머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을 보면 다시 인생은 얼마나 짧은 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풋풋함과 지긋한 나이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를 향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신다. (정말 많이 하신다)


눈을 반짝이며 젊은 시절 한국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는지 공무원이었는지  혹은 사업가였는지를 이야기하다가 미국에서 고생한 이민생활을 이야기로 연결되어 결국 자식이 어떤 대학을 나와 연봉이 얼마인지를 이야기하시다가 보통 손주 손녀 자랑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끝이 난 이야기도 다시 도도리표로 악보처럼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어르신들이 계시다. 그것도 볼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말이다. 80대이지만 60대 같이 젊어 보이지 않냐며 팔다리 근육을 자랑하며 이 나이에도 아프지 않고 이렇게 건강하다는 걸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내게 매번 볼 때마다 말씀을 건네실 때면 정말 숨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형부가 슬쩍 내게 이런 말을 건넨다.


누구나 자기 마음에 붙잡고 사는 게 있어서 그래.  

그게 자랑이고 자존심이고 기쁨이라서...

나도 나이 먹으니까 그런 게 좀 생겨.

붙잡고 사는 그 하나가 버티게 하는 힘이 있어.

그래서 그래...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오늘 대중 앞에서 마음껏 발레를 하던 그 70대 할머니는 발레가 그녀의 자랑이고 자존심이고 기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든 말든 뭐라 하던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바로 서서 토슈즈를 신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그녀가 내뿜는 자랑은 내가 이제까지 봤던 그 무엇보다도 멋지고 우아했다.

누군가에게는 왕년에 내가 잘 나가는 댄서였어!라고 말했을 과거형의 기쁨이 지금 그녀에게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나이는 숫자일뿐...

누군가는 그녀에게 주책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 생각이 들자 멈칫 해진다.


나는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고 설레게 하며 내 자랑이자 자존심인가?


2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몇십 개의 댄스를 봤다.

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체조건을 지닌 매우 나 같은 이들이 보인다.


프로페셔널하지 않아도, 덩치가 커도, 팔다리가 짧아도, 좀 뻣뻣해도 이들을 춤추게 하는 것은 춤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활기찬 댄스가 내뿜어내는 에너지는 몸치인 나의 어깨도 들썩이게 한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저들처럼 내 어깨를 들썩이게 할 만큼 기쁨이자 자랑이자 자존심이 내겐 무엇일까?

난 무얼 붙들고 사는가?


딱 하나다.


나의 자랑이자 기쁨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고 일상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건 나를 지키는 가장 큰 자랑일 것이다.


내가 70세에도 감 떨어지지 않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래서 내 생각과 태도와 정신이 명료하고 맑고 지혜로울 수 있다면 나 역시도 그녀처럼 글 쓰는 일을 붙잡고 살 것이다.


그리고... 신나는 음악에 어께를 들썩일것이다.

누가 보던 말던 뭐라 하던....








매거진의 이전글 라떼 마시던 라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