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절실한가
An old rabbi names Albert Lewis once told me. He had lost his four year old daughter to an asthma attack in the 1950s.
I asked if even he, a righteous clergyman, didn’t get mad with God over that.
“Oh, I was furious.” he said.
Then why didn’t you stop believing?
“Because,” he said, “as terrible as I felt, I took comfort in having something I could cry to, a power to whom I could shout, ‘why?’ It is still better than having nothing to turn to at all.”
Finding Chika by Mitch Albom
토요일 습한 아침, 아직도 못 끝낸 Finding Chika를 읽고 있다.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온 글귀.
그리고 케빈 엄마가 생각났다.
왜 하나님은 내가 가장 의지하는 아이를 먼저 데려가셨을까?라고 울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가?
왜 하나님은 어리고 순수한 Chika에게 몹쓸 병을 주셨을까?
왜??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왜냐하면”이라고 답하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왜라는 질문의 답을 학문에서 찾으려 했고 그 답은 언제나 충분하지 못하다. (깊이 있는 답을 얻기 위해 인간은 종교를 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충분한 답을 해주지 않지만,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는 반응하고 위로하신다.
인생은 늘 힘들고 벅차고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들고 견디게 하는 힘은 또 하나님께 얻는다.
인간에게는 답 해주는 하나님도 필요하지만 화도 분노도 슬픔도 들어주고 받아줄 하나님도 필요하다.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은 정말 너무 절실하게 필요하다.
“여호와여, 내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소서. 나는 주께 헌신한 자입니다. 내 생명을 지키소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를 의지하는 주의 종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하루 종일 주께 부르짖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바라봅니다.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는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해 주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한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절히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주는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므로 내가 환난 날에 주께 부르짖습니다.”
시편 86:1-7 K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