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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ul 26. 2023

침묵은 변화로 이끌지 못한다.

William Turner처럼 인종차별과 우아하게 싸워야 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차별의 경험을 겪는다. 때로 그 차별은 너무나 저급한 사람들의 무식한 행동과 말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무지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무지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과 행동이 실수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경우를 말한다.  


나 역시도 미국에서 살면서 겪은 인종차별 이야기는 구구절절 많기도 하다.

한국애가 왜 서양의 주제로 작품을 만드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한국 여자는 아무 남자한테 다리를 잘 벌려주는 것 같다며 이혼한 한국인 며느리를 욕하는 백인 할아버지를 만난 적도 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동양인일 거라 생각한 한 여자는 화장실에서 다짜고짜 내게 욕을 한 적도 있었고 부추를 사는 내게 실실 웃으며  쓰레기 냄새나는 걸 먹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 번은 상점에다 옷을 리턴하는 내게 옷에서 냄새가 난다며 이상한 음식냄새 못 느끼냐고 하기도 했다.  (옷은 봉투에서 꺼내지도 않은 채 24시간 차에 있다가 리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거 말고도 기가막힌 스토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몰라서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침묵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자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게 되었고 나름의 사명이라 생각하며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프로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한다. ( 글의 마지막에 인종차별을 대하는 나만의 우아한 방법에 대해 더 이야기하겠다)


인종차별의 문제는 제대로 된 차별 교육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한다. 


인종차별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유색인종일 때 사람들은 어차피 너네 이야기라며 피해자 코스프레 한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유색인종의 인종차별 경험을 공론화할 때 그것은 "너희들"의 이야기가 되지만 백인이 같은 주제로 이야기할 때 차별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다른 인종이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종차별을 연구하고 발표하는 이들에 더 많은 백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William Turner, The Slave Ship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존경받는 작가 William Turner는 노예제도를 매우 혐오했던 작가였다. 당시 매우 급진전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던 그는 1781년 일어난 잔인한 사건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노예제도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했다.


 1781년 노예를 싣고 오던 배를 운항하던 선장은 배 안에 갇혀있는 노예와 동물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을 그대로 데리고 가면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어 손해를 볼 것임을 알았던 선장은 이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기로 한다.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지만 이들이 바다 가운데 목숨을 잃는다면 보험 처리를 할 수 있었고 잃어버린 만큼의 재산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장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렇게 생명을 바다에 버렸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듯 말이다.


해가 막 넘어가는 저녁 무렵 거친 파도에 사람들과 동물들이 물 밖으로 얼굴과 손을 내밀지만 이미 배는 저쪽 멀리 있다. 파도는 점점 더 거칠어져 생명을 곧 앗아갈 것임을 예상 된다. 지는 태양과 죽어가는 생명, 거친 파도와 노을은 생명과 죽음이 만나는 공포스러운 지점을 보여준다. 희망은 없고 절망만 있다. 하지만 그 절망은 죽어가는 생명뿐만 아니라 저 하늘에도 파도에도 있음을 보여준다.   


William Turner는 인종차별을 향해 선택한 방법은 그가 가장 잘하는 페인팅이었다. 인간을 생명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던 이들에게 멋지게 한 방을 날리며 굵직한 매시지를 날렸다.

"하늘이 바다가 진노하며 너의 잔인한 짓을 다 보았노라!"


William Turner, The Great Western Railway


William Turner는 나중에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영웅적인 존재가 된다. 도대체 뭘 그린건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며들듯 자신의 색을 서로에게 양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화법에 젊은 작가들은 환호했다. 흑과 백의 경계, 아웃라인으로 나뉘는 색의 경계, 혹은 사물과 공간을 나누는 경계를 없애버림으로써 모든 색을 조화롭게 만드는 작가의 작품 속에서 인상파 화가들처럼 나 역시 작가의 우아함을 발견한다.


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와야 했다.

"당신의 아버지는 영어를 할 줄 압니까?"

"아니요 모르십니다.  그래서 제가 함께 왔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귀찮은 동양사람들이 왔다는 듯이 불친절하고 차갑게 굴기 시작했다.

나의 또 다른 직업이 병원 매니저 아닌가?

이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매너임을 나보다 20살은 더 많아 보이는 그녀는 알지 못하는 듯하다.

불친절한 그녀에게 묻는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을 묻는 나를 보며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병원 관계자와 불만 신고 센터에 긴 장문의 이메일을 썼다. 학교에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적었던 나의 리포트 솜씨는 이런 데서 빛을 발휘하지 않는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적어 내려갔고 나는 오후에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정말 미안해하는 그는 그녀와 그녀의 슈퍼바이저와 만날 예정이며 지침을 다시 한번 내릴 거라 했다.  (심지어 그는 나의 리포트가 너무나 자세하게 적혀 있어서 상황파악을 쉽게 할 수 있었다고 했을 정도다)


나는 이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매번 인종차별과 싸웠다. 이멜을 보내고 전화를 걸고 그곳의 매니저뿐만 아니라 본사까지 내 경험을 알렸다. 그런 노력으로 나는 어느 대기업의 회사 부회장이라는 사람에게까지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 역시도 이민자의 아들이라며 나의 경험을 안타까워하며 사과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직원 관리를 잘하겠다는 다짐까지 받으며 말이다.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세련되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격한 감정을 걷어내고 일을 처리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가 인종차별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지를 일깨우는 일이자 동시에 더불어 화목하게 잘 살아가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침묵하면 변화를 꽤 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내가 잘하는 우아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은 강연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끊임없이 지침 없이 계속 다루고 다뤄 알려야 한다. 우린 모두 존경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William Turner의 그림을 선택한 건 그가 정말 멋진 그림으로 한방 제대로 날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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