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도 이렇게 더울지 몰랐다.
"너무 더워. 정말 날씨가 너무 더워."
출근길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고 녀석은 깊은 한숨을 쉬며 점점 동남아 날씨처럼 변하는 한국의 여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게... 왜 점점 사는 게 더 어려워지냐. 우리 애들은 어쩌라고.... 날씨가 이런데 농사가 되겠냐고... 나중에 우리 애들은 뭐 먹고살까..."
가벼운 마음으로 안부 전화를 했지만 이내 우리는 아이들 미래 걱정에 한숨을 내쉰다. 지구 온난화가 끝나고 끓는 지구의 시대가 왔다고 하니 고민은 더 커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을까?
사무실을 함께 쓰는 지리학 강사는 한참 내게 지구온난화 현상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사회가 맞닥뜨릴 문제들을 이야기해 줬다. 우선, 점점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많아지면서 북쪽으로 인구 이동 현상이 일어날 거라 했다. 인구이동 현상은 국경과 국경 사이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일 거라고 했다. 이로 인해 일자리와 주거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빈부의 격차는 극심화 될 거라 했다. 미래에는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어느 주 어느 나라에서 이동해서 왔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차별의 문제도 사회적인 이슈가 될 거라고 하니... 같은 국민끼리 난민취급하는 현상이 일어날 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지금 당장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비를 70% 줄이는 거지. 생산도 70%를 줄이는 거지. 자 생각해 봐. 경제가 돌아야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데 그걸 70%나 줄인다니! 그럼 지구 온난화는 늦출 수 있어! 근데 그 이전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안 돼서 세상이 멈추지. 그 어떤 나라와 국민이 먼저 앞서서 그걸 행하겠다고 못해. 그래서 난 앞으로 희망이 없다고 봐."
그와의 대화는 정말 절망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환경을 공부한 어느 후배는 나의 절망을 단 한마디의 말로 현실화 시켰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절감하고 하는 거 그거 이미 끝난 얘기예요. 못해요 그거. 이미 끝났어요. 우리 교수님들도 다른 대책이 있을 거라는 희망도 이제 버렸다고 하는걸요. 점점 안 좋아질 거예요."
시스틴 성당에서 한참을 바라봤던 최후의 심판은 너무나 강렬했다.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일까? 이 작품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직접적이었다. 간접적으로 저기 누군가가 겪고 있는 잔혹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혹은 우리가 겪어야 할 마지막 때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 예수가 구름을 타고 이 땅에 다시 군림하여 심판을 한다. 죽은 예수를 안고 있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만든 조각상 피에타를 기억한다면 최후의 심판의 성모 마리아는 주연 자리를 아들에게 내어주었다. 지금 마지막 때 예수는 심판자의 모습이다. 작품 한가운데 서서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려낸다. 나팔을 불며 두 개의 책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펼쳤다. 작은 책은 천국에 갈 사람들이요 큰 책은 지옥행이다.
왼쪽은 천국행이니 천사들도 그들을 부드럽게 들어 올려 위로 보낸다. 하지만 오른쪽은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 지옥에 가고 싶지 않다며 발버둥 치는 이들을 천사는 밀어낸다.
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의 얼굴은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차가운 심판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 중인 예수는 자비와 용서가 아닌 정의와 공정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했을 때! 그때 이미 충분히 너희들은 기회가 있었어! 이제는 아냐! 끝이라고!"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만들던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회가 둘로 나뉜 상태였다. 교회가 나뉘자 믿음은 둘로 나뉘었고 사람들도 나뉘었다. 그 나뉨은 결국 폭력과 난동으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너무 어수선했던 시대를 바라보던 미켈란젤로는 심적으로 많은 부담과 고통을 느꼈고 그것을 작품에 그대로 반영했다. 어쩌면 그는 정말 최후의 심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 그림의 전반적인 모습을 커다란 해골 모양으로 꾸몄다. 마치 이 작품은 오직 죽음만을 그릴 거라 결심한 듯이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지 459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아직 살아있고 수많은 교회는 각자의 믿음으로 지탱되어가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미켈란젤로는 어떤 모습으로 최후의 심판을 그릴까? 푸른색 백그라운드 대신 강렬한 오랜지와 붉은 하늘을 그려 넣고 붉게 달아오른 지구를 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아마도 똑같이 놔두지 않았을까 싶다.
몇백 년에 지났음에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우리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보낸다.
"살아 있을 때 늦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 제대로 사시오! 심판의 날이 오면 그땐 정말 끝이오!"
앞으로 인류는 뜨거운 지구 아래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쓰러지고 난민이 되어 떠돌 것인데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면 그건 정말 미래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모일 때 힘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최선의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내 개인의 힘은 너무나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나마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쓴다. 미래는 어둡지만 그 어두움에 빛이 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니까 말이다.
함께 견뎌내는 것.
함께 이겨내는 것.
방법이 없다면 이거라도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