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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Aug 01. 2023

서양난을 키우고 있다.

무언가를 잘 키우는 데는 정성이 필요하다. 

밖에서 키우는 장미나 무궁화 같은 화초들은 참 알아서 잘 자란다. 매번 눈도장을 찍지 않아도 지네들끼리 알아서 잡초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잘 지낸다.  알아서 잎사귀가 나오고 꽃잎이 나오니 나는 그저 감상만 하면 될 일이다. 물론 종종 내리는 비와 햇빛이 잘 어우러져 나타나는 현상이겠지만 나의 노동력을 요구하진 않는다. 


기르는 실내 화분마다 죽이는 재주를 부렸다. 

물을 많이 줘서 죽이고 물을 안 줘서 죽이고 밖에 놔둬서 죽이고 날이 추워서 죽이고 날이 더워서 죽이고 햇빛이 너무 세서 죽이고 그늘에 놔서 죽이고 환기를 안 시켜줘서 죽였다. 애완견처럼 짖거나 애교를 부리지도 않으니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적당한 물과 온도와 햇빛이 있어야 잘 키운다는데 도대체 그놈의 적당한 양을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싶었다. 만약 이 모든 게 계량컵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건강한 화초를 키우는데 햇빛 다섯 컵에 적정온도 한 컵에 물 두 컵정도 필요하다고 한다면 알아듣기가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 실내 화분을 들이지 않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집안 구석에 초록빛이 감도는 화분이 있는 게 예뻐 보였고 다시 도전을 하였다.  내 화분은 무조건 모든 환경에서도 잘 견딜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한 것이어야 했다. 주인이 물을 많이 줘도 조금 줘도 불만 없이 견딜 수 있는 녀석들로 말이다. 스킨다비스가 그렇다고 해서 녀석을 키우시 시작했다. 


이 자식... 나랑 잘 맞는다. 

험난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렇게 한 개 두 개를 키우다 보니 이제 집과 사무실에서 11개의 화분을 키우고 있다. 그중 4개가 서양난이다. 


서양난을 키우게 된 건 선물을 받았기 때문인데 녀석이 죽질 않는다. 죽지도 않고 꽃을 계속 피운다. 유전자가 잘못된 꽃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을 만큼 한 겨울에도 한 여름에도 꼭 한 두 송이씩을 피우며 날 놀라게 한다. 녀석은 벌써 나와 함께 1년을 보냈고 요즘도 3개의 꽃을 피우고 3개의 작은 봉우리도 달려있다.  그 녀석한테 반해서 서양난을 키우게 되었다. 


아침저녁마다 보고 햇빛 보게 해 주고 너무 강하다 싶음 블라인드를 살짝 내려주며 아기 키우듯 그렇게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페이스북 서양난 그룹게 가입까지 하며 녀석들을 관리하고 있다.  아직 아마추어지만 열흘에 한 번씩 영장제까지 뿌려 가면서 키우는 나의 정성을 아는지 잎이 단단해지고 건강해 보인다. 내 노력과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녀석들은 매우 잘 자라고 있다. 말도 못 하고 애교도 못 부리고 짖지도 못하는 녀석이 나에게 반응을 해준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생명을 키운다는 건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 예뻐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은 키우는 입장에서 키움을 당하는 입장에서 모두 부유해지는 일이다. 


물질의 부유도 좋지만, 정신적인 부유함이 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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