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고백2- 메마른 타일 위에서의 샤워
1.겨울과 여름의 샤워
한낮의 여름. 고단한 평일을 보낸 뒤 주말 오후 12시 즈음, 한낮의 더위와 매미 울음소리가 잠을 깨운다. 간밤에 흘린 땀으로 푹푹 젖은 티셔츠의 불쾌함을 느끼며 아직 덜 깬 몸을 일으킨다.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바닥에 붙이자마자 느껴지는 습함.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쩌억쩌억' 발바닥이 마룻바닥에 들러붙는다. 당장의 더위를 없애고자 선풍기를 약풍에서 강풍으로 바꿔보지만 에어컨을 틀지 않는 이상 역부족이라 느낀다. 그래도 일어나자마자 에어컨을 트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신 샤워를 한다. 땀에 젖은 옷과 팬티를 훌러덩 벗어버린 뒤, 찬물을 틀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찬 기운으로 전신을 덮어버린다. 찬물에 몸을 얼리고 선풍기 바람을 쐬면 그 시원함은 배가 된다. 목욕은 너무 과하고 세수나 머리를 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몸을 다 적실 수 있는 샤워. 그 중간이 좋다.
죽어도 씻기 싫어 할머니로부터 때수건으로 '씻김질'을 당하던 10대 시절을 지난 나는 하루에도 두 번씩 샤워를 하는 20대가 되었다. 2차 성징을 지나 매일같이 유전이 터져 나오는 지성피부를 갖게 된 이후로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이라도 씻지를 않으면 아마 잠을 설칠 것이다(안 씻은 날이 없기 때문에 어떨지 모른다). 고단한 하루 끝에 즐기는 샤워는 하루일과의 피곤함을 싹 가시게 해 주어 남은 하루의 절반을 마치 새로운 하루처럼 만들어준다. 막상 바로 잠들어버리고 싶던 저녁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어 진다.
겨울에 느끼는 샤워의 풍경 또한 좋아한다. 동상에 걸릴 듯한 추위에 얼어가는 손발을 뜨거운 물로 익히고 나면 손발이 빨갛게 익으며 간지럽다. 그렇게 간지러운 피부를 긁으며 오늘 정말 추웠구나를 새삼스레 느낀다.
tmi- 추위로 얼었던 피부가 녹아 빨갛고 간지러워지는 증상은 동상을 비롯 '동창'에도 나타는 염증 반응이라고 한다. 동창은 가벼운 작열감과 간지러움으로 금방 호전되지만 동상은 피부조직이 괴사한 것이기에 위험하다.
2.샤워하는 풍경 (메마른 타일바닥)
일반적으로 샤워는 집의 화장실에서 가장 많이 한다. 하지만 샤워는 화장실을 비롯한 헬스장과 수영장의 샤워실, 목욕탕에서도 이루어진다. 모두 다른 공간에 다른 풍경이지만 이 모든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샤워장소의 풍경. 그건 바로 바닥. 물로 샤워를 하는 장소의 바닥은 특유의 풍경이 있다. 줄눈과 타일로 메운 바닥이거나 거친 돌로 이루어진 바닥이거나. 두 바닥 모두 배수가 잘 이루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기 위한 목적을 두고 깔린 바닥이다. 하지만 이 특유의 바닥 질감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만 오천 년 전부터 인류가 신발을 신고 다닌 이후, 무엇인가 밟으면 안 될 무언가를 밟은 불쾌함을 화장실 바닥에서 느낀다. 정말 애매한 느낌의 거친 돌바닥과 매끈한 타일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다른 질감의 줄눈들. 그래서 몇몇은 타일 위에 또 편백나무 타일을 놓아 건식 화장실을 만들거나 욕실매트를 깔고 가장 쉽게는 '욕실화'를 신는다. 씻으러 들어가는 욕실에서 발이 닿지 않으려고 신발을 또 신다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상상을 해본다. 수영장을 보면 매번 붙어있는 경고의 문구들.
"수영장 바닥이 미끄러우니 뛰어다니지 마십시오."
매일같이 물이 넘치고 흐르는 수영장이 한순간에 메말라버린다. 마치 막 공사를 끝낸 수영장처럼 메마르지만 그 어떠한 흙먼지 한 톨도 흩날리지는 않는다. 그 수많은 타일 위를 마치 육상 선수처럼 맨발로 달려 나가는 상상. 그 불쾌하고도 애매한 감각의 타일이라도 그렇게 넓은 공간을 달리면 인공적인 바닥이라도 자연 속처럼 뛰어다닐 수 있으리라. 아마 미래소년 코난은 나보다 더 자유롭게 뛰다니리라.
그렇게 매일 샤워를 하면서 다 젖은 화장실과 메마른 화장실을 번갈아 눈에 담는다. 그리곤 불쾌한 샤워를 하지 않기 위해 고무 매트 위를 밟아 욕조까지 들어간다. 몸이 얼정도로 차가운, 혹은 앞에 안 보일 정도로 자욱한 김서린 화장실을 나오고선 규조토 발매트을 여러 번 밟아 물기를 없앤다. 그러곤 남은 하루를 더 활기차게 시작한다.
목욕(혹은 샤워)이라는 '몸을 깨끗하게 하는 행위'는 고대부터 신성한 행위였으며 현대의 인간이라면 모두가 실천하는 청결행위다. 이렇게 대중적인 행동을 '취향'이라고까지 이름 붙일 것인가 싶지만, 그 보통의 행위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나열할 수만 있다면 취향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