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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까지 3km.

취향1- Q. 바다vs산 중에 뭐가 더 좋아? A. 난 계곡.

by 잡이왼손

홍대입구에서 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카레이서 못지 않는 드리프트 한 번에 굽이진 언덕을 한 번 지나면 다리 하나를 지나게 된다. 그 다리 아래로 물이 하나 흐르는데 그 이름이 홍제천. 이 홍제천은 한강까지 이어져 많은 사람들의 산책코스이며 학기중 기숙사에 다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풍경1-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 달리라고 만들어둔 우레탄 트랙의 본연에 충실한, 뛰는 사람들. 가장 신기한 건 런닝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 런닝을 한다고 하면 머릿속에 약 30대 정도의 일에 치이면서도 여가시간에 쉬지않고 자기개발과 관리를 꾸준히 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주름진 할아버지도 런닝을 한다. 아줌마도 런닝을 한다. 다이어트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통통한 중학생, 이봉원처럼 지구력이 높아 보이는 아저씨. 정말 아무나 다양하게 런닝을 한다. 뛰는 사람들이 오면 걷는 사람들이 스스슥 길을 넓혀준다. 운동하는 그들을 리스펙하는 걸까.


풍경2- 걷는 사람들. 산책나온 강아지와 견주. 그 강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이와 함께 산책나온 부모. 유모차를 끄는 사람들. 유모차 안에는 아기가 있기도 강아지가 있기도 하다. 저녁을 다같이 먹고 부른 배를 꺼트리려 나온 듯한 직장인 무리. 모두가 그냥 걷기 위해 이곳에 있다. 가장 눈에띄는 건 벤치에 앉아있던 노부부.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눈에 주름이 질 때가 되도록 같이 산책하는 사이라니. 그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나의 노년을 그려본다.


풍경3- 저녁만 되면 행렬을 이루어 같이 춤추는 아줌마들. 한 아줌마의 지도 아래 모두가 같이 허리를 빙빙 돌리고 목을 쭉쭉 뻗어댄다. 매일같이 오후 7시부터 8시까지 모두 하나같이 모여 하나같은 몸을 움직인다. 주변 주민들의 모임일까 혹은 이 동네 음식점 사장님들 모임의 저녁 루틴일까. 정체모를 여인들이 춤으로 하나된 모습은 봐도 신이난다. 아무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니 오래된 약속일테다. 공원에 모여 춤을 추는 풍경은 중국에서나 있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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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을 관찰하며 한강에 가까워질수록 코에서 물비린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천에서 물이 적게 흐를 때에는 맡지 못했던. 물이 고임과 흐름이 커짐에 따라 맡을 수 있는 물 특유의 냄새에서 나는 계곡을 떠올린다. 내 어린 시절이 얽혀있는 계곡.

인천 앞바다는 다 뻘이다. 바다에서 수영을 해도 뿌연 흙탕물일 뿐이다. 산을 오른 기억은 힘겹게 정상을 올라도 성취감을 느끼기보다 빨리 내려가고플 뿐이다. 그래서 산이냐 바다냐의 질문에는 난 계곡을 떠올린다. 동해까지 멀리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맑은 물과 산 속의 녹음이 푸르른 곳. 어린 시절 계곡으로 놀러가던 가족의 풍경.

허가를 받은건지 모를 계곡 옆 닭백숙 집과 훈제오리 집. 자갈밭 주차장에 들어가는 자동차 바퀴의 돌을 밟는 소리. 계곡 흐르는 물살 위에 놓아진 평상에 자리를 잡는다. 마냥 물놀이가 좋아 다른가족 처음 본 아이와도 물총을 쏘며 논다. 그 맑은 계곡 속에서 수경을 쓰고 찾던 다슬기와 송사리. 그 맑고 차가운 물속에서 따뜻한 물줄기를 살포해버린 나와 동생. 차갑게 한다는 비과학적인 지식에 그 따뜻해져버린 물에 동동 띄어놓은 수박. 그 수박과 닭백숙을 먹던 그 풍경. 그 계곡의 풍경이 한강을 걸어가며 맡은 물비린내에서 떠오른다.

지금에 그 풍경은 이제 볼 수 없다. 불법 건축물로 계곡에서 장사를 하던 음식점들이 다 없어졌다. 하지만 그 물흐르는 계곡만큼은 여전히 남아있겠지. 여름의 물놀이를 말할때면 그 어느 에메랄드빛 바다보다 그 많은 놀이기구가 있는 워터파크보다 나는 그 시절의 계곡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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