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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의 두께, 6mm

취향3- 창문이 좋은 사람. 집 안이 좋지만 바깥도 궁금해.

by 잡이왼손

1. 안과 밖이 있는 삶

창이 좋다. 햇빛이 드는 창.

시험이 끝나거나 마냥 할 일이 없는 방학이 되면 집에 틀여 박혀 있기 일쑤다. 눈을 떠도 몇 시간씩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아무래도 우울해지기 마련인데, 이럴 때는 샤워를 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 만한 게 없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찹찹 바른 뒤 의자에 앉아 방충망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우울감이 확 사라진다. 작년 코로나로 온라인 강의를 듣던 학기에 자주 이러곤 했는데, 이젠 습관이 들어 일어나면 환기를 하는 게 습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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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막힌 창을 열어두면 안과 밖이 시각을 넘어 다른 오감과도 연결된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 비명소리. 욕설(?). 유행어 등등. 아이들이 요즘 인기인 드라마의 대사를 읊어댄다.

"멋지다 XX야! 브라보~! 알았으면 끄덕여~". 나도 어릴 적 개콘 유행어를 따라 하며 놀았던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유치원이라서 계절 별로 들리는 소리들이 있다. 가을에 찾아가는 연주회가 오면 단지 내에 각종 바이올린과 금관악기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름엔 큰 수영장을 조립하여 아이들이 꺄르르 소리에 물을 첨벙 대는 소리도 들린다.


폭염에 모두가 창문을 항시 열어두는 여름이 되면 모두의 소리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매미가 밤낮을 불문 울어대는 구애의 소리는 기본 멜로디. 아랫집, 윗집에서 들려오는 생활소음으로 코러스를 더한다. 누군가 티비를 보다 잠에 들었는지 코 고는 소리가 박자를 맞춰 들린다. 어느 집에선 부부싸움을 하는지 남녀가 언성을 높이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알고 싶지 않은 소리까지 다 들리는 창밖의 풍경. 가끔은 매미소리가 약과처럼 들린다.


비가 내리면 나는 흙냄새, 여름의 소음, 눈이 내리는 창밖의 풍경까지도 나는 어디까지나 집 '안'에서 '밖'을 향유한다.


2. 인간의 오래된 욕구, 훔쳐보기

Gustave_Caillebotte_-_Paris_Street%2C_Rainy_Day_-_1964.336_-_Art_Institute_of_Chicago.jpg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집 안에서 안전을 추구하면서도 바깥을 궁금해하는 양가적 심리는 매우 오래되었다. 야생의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을 지었지만 인간은 그 벽에 구멍을 뚫었다. 더운 사막지역은 창문이 좁고 열대우림은 크고 넓을 테지만 어느 문화나 창문은 존재하고 안에서 밖을 살펴본다. 이는 인간의 생존본능과 호기심의 양가적 심리가 반영된 문화이다. 안전하고 싶지만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카페가 생긴 이유도 마찬가지다. 카페의 통유리창은 이러한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1860년대 파리는 도시공간을 계획적으로 구성하려 했다. 그래서 건물 사이사이에 큰 대로가 생겼고 이곳엔 귀족과 평민 할 것 없이 모두가 인형극과 곡예 등의 공연을 즐겼다. 모든 신분에게 열려있는 대로에 위치한 카페에서는 극장과 달리 자신이 보고 싶은 걸 관찰하고 구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창문을 통한 사람의 '훔쳐보고 싶은 욕망'은 오래되었다.


3. 창이 큰 집에 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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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층에 위치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눈앞에 난 기다란 창문을 열어 따사로운 햇살에 눈을 찌푸린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잎을 흔드는 아레카 야자와 몬스테라에 물을 준다. 샤워를 마친 뒤 테이블에 앉아 오늘의 작업을 시작한다. 무릎 위에는 어느새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올라와 고로롱 기분 좋다는 소리를 낸다. 스피커로 노래를 틀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내가 꿈꾸는 나의 집이다.)

우리 집은 남향인데 어린 시절 주말에 일찍 일어난 아침의 거실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체리색 바닥에 비몽사몽한 채로 드러눕는다. 양 옆으로 이어진 두꺼운 이중창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창밖에 붙은 창살 사이로 길게 늘어졌다 줄어드는 햇살과 그림자를 뚫어져다 쳐다보다 졸음에 다시 눈을 감는다. 감은 눈 바깥으로 비추는 햇빛에 깜깜한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이내 사라진다.

모든 생명은 빛에 본성적으로 끌린다. 집이 남향 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채광이 좋은 집에 살고 싶다 다짐한다. 엄마가 내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우리 아들 돈 많이 벌어야겠네."라고 대답한다.







ps. 유우명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중 창문을 통한 훔쳐보기 심리가 반영된 '이창'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 교양 시간에 이 작품과 훔쳐보기 심리는 다루었는데 궁금한 사람은 한 번 보길 바란다. (오래된 영화라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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