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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가 아니라 다이어트 댄스라고요?

아줌마들 사이에서 같이 춤추는 20대 남자 대학생

by 잡이왼손

가을 학기가 막 시작한 무렵, 동아리 부스를 운영하느라 힘이 빠진 김 모씨. 이틀간 헬스장을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헬린이 김 모 씨는 기필코 오늘은 헬스장에 가리라, 새싹 같은 열정을 불태우며 다짐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머리로만 한 다짐. 몸이 그 다짐을 실행할지는 미지수다. 무게를 들기엔 내일의 근육통이 두렵고 유산소를 했다간 내일 오전 수업시간에 절대 못 일어날 것을 알기에, 요가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헬스장에 등록할 때 본 전단지에는 GX수업이라는 항목이 적혀 있었다. "Group Excercise" 말 그대로 단체 운동인 GX수업은 요가, 필라테스, 다이어트 댄스, 라인 댄스 등등 여러 명이 함께 운동하는 수업을 말한다. 헬스장을 등록하면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기에, 그중 요가수업이 지금에 딱이라는 생각에 바로 수업을 들으러 헬스장으로 향했다.

GX수업은 거울이 달린 큰 방에서 진행된다. 사람이 있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지만, 오전 운동을 하러 갔을 때 한 번, 라인댄스 수업 하는 걸 걸 본 적이 있다. 가히 그 풍경은 이질적이라 말할 수 있다. 쇠로 된 바벨들과 땀 흘리는 남자들이 넘치는 공간 사이로 빨갛고 노란 형형색색의 드레스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탱고나 삼바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실제로 그런 음악이 들렸지만) 풍성한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에 어깨, 가슴, 다리 어디 하나 빼놓지 않고 달린 반짝이들까지. 무채색의 운동복을 입은 헬스인들이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옷을 입고 있던 건 모두 할머니들이었기에.

그런 풍경을 목격한 사람들 중 저 GX 수업실에 선뜻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다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왜 수업을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알 수 있었다. 헬스장의 8할은 남자들이고 저런 수업 분위기에 낄 남자는 극히 드물었으며 내가 지금까지 헬스장에 다닌 동안엔 전무했다.

하지만 난 기꺼이 들어간다.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나에게 추가비용 없이 다양한 운동을 배울 수 있다는 건 플러스일 뿐, 마이너스 요소는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7시 요가 수업. 수업이 이루어지는 체단실 안에는 60대 나이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 두 분이 매트에 누워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 그분들과 눈이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 건지 목이 결린 건지, 애매한 느낌의 목례를 건네며 상대방에게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볼륨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애매한 입장식을 거친 후,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요가수업하는 거 맞죠?"

아주머니: "?, 아니. 이거 다이어트 댄슨데?"

.

.

.

.

"??? 아 다이어트 댄스. 아, 네..."

"??????"

내 머릿속 떠오르는 수십 개의 물음표에 내가 본 전단지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수요일 오후 7시 빈야사 요가 수업이라 적혀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그 전단지는 오래전에 뿌린 거라 지금 스케줄과 달랐다. (아니 그럼 전단지를 바꾸던지 뿌리지 말던지 하던가요..)


곧이어 문으로 비범한 아우리가 풍기는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다른 아주머니들이 그분께 인사를 하였기에 나도 소심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그가 풍기는 포스는 누가 봐도 선생님의 포스였다. 중년의 나이 같음에도 과감하게 양갈래로 딴 갈색 머리에 하얀 나이키 스포츠 밴드. 배꼽이 보이는 농구 티셔츠에 힙합스러운 통이 넓은 바지. 목에 걸린 금빛 체인 목걸이에 관자놀이까지 쭉 뺀 아이라인까지. 그 아우라 넘치는 모습에 무한도전에 나온 할마에가 스치듯 떠올랐다. 선생님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시계추처럼 혹은 그네처럼 길게 늘어진 갈색 양갈래가 좌우로 움직였다.

원하던 수업은 아니지만 이렇게 문 밖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낯선 아줌마들 사이에서 같이 춤을 추는 경험은 예상 밖이었지만 춤을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럭키였다. 곧바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방에 들어왔고 댄스 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시대종류 불문 다양한 장르를 바꿔가며 노래를 틀으셨다. 발랄한 여자 아이돌 그룹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 비트가 통통 튀는 유명한 팝송, 한물갔지만 여전히 신나는 뽕짝 트로트 노래 등, 약 15곡의 노래에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춤은 다른 유산소보다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사이클이나 러닝머신은 다리만 움직이며 눈은 핸드폰이나 티비에 고정한 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춤은 한순간 멍을 때리다 동작을 놓쳐버리면 다시 흐름에 올라타기 어렵다. 선생님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고 외우기도 해야 하니, 춤은 동체시력도 키우고 기억력도 키우는 복합적 운동인 셈이다.



온갖 나이대의 여자들 사이에서 20대 대학생 남자 하나가 같이 춤을 춘다. 어느 여자는 하얀 뽀글 머리의 할머니, 아이들의 저녁밥을 차려주고 나온 주부, 바로 앞 시장에서 가게를 마감하고 나온 듯한 아주머니 등 다양한 연령대와 모습의 여자들이 한 곳에서 노래에 맞춰 팔다리를 휘적거린다. 그 사이에서 남학생도 동작은 크지만 뻣뻣한 관절을 뽐내며 같이 휘적거린다. 그중에 춤을 엄청나게 잘 추는 사람은 선생님 말고 없었기에, 휘적거린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렸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뺀질 대지 않고 열심히, 선생님의 동작이 마치 내 동작인 것처럼 눈을 열심히 굴리며 춤을 춘다.

춤을 추다 내가 이 수업에 참여하기 이전의 여러 번 이 사람들이 했을 댄스수업의 풍경을 생각한다. 각자의 일과에서 벗어나 이 시간만큼은 다이어트 댄스를 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이들이 모인다. 그리고 여성들이 모이는 모임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 여성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평소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떠는 엄마들. 문화센터에서 같이 무언가를 굽거나 실을 꿰는 여성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처음 보는데도 살갑게 대화를 주고받는 할머니들. 그들의 출처모를 엄청난 연대력과 수다력에 나는 신기해하기도 감탄하기도 한다.

그리고 왜 중년 남성들의 모임은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없는지 생각한다. 같이 술을 마시거나 공원에서 바둑을 두는 아저씨들은 봤어도, 같이 문화센터를 다니거나 운동을 하는 아저씨들은 본 적이 없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 1위 집단은 50대 남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고독사인 경우가 많다. 이를 보면 중년남성들이 사회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이 어떨지 생각하게 된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아버지의 모습이라던가, 단칸방에 혼자 티비를 보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독거노인의 안타까운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들의 왜 사회 속에서 함께하는 모습이 없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들이 왜 연대감을 느끼기 어려운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춤을 추고 있는 내 옆에서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한다. 중년 남성이 춤을 배우는 모습이 그렇게 이상한 것인가? 하고 그들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강요받았을 남성의 모습을 떠올린다. 남자가 춤을 추는 건 경박하다던지, 남자는 말수가 적고 강해야 한다던지 말이다.


그냥 수업시간을 착각해 아줌마들과 같이 춤을 추고 있었을 뿐인데, 너무 깊게 생각해 버린 거 같다.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께서 나에게 춤을 잘 춘다고 한두 번 춰본 실력이 아니라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왠지 모를 약간의 관심을 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수업이 끝나자 쿨하게 떠났다. 오지랖 넓고 남들에게 관심이 많은 아줌마들의 관심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나에 대한 무관심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같이 수업을 듣고 싶어졌다.


아, 오늘도 헬스장을 갈지 말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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