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한강, 다리 순례 04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는 예보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신사역에서 밖으로 나와 마주친 양옥집들이 반가웠다. 골목길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동네였다. 길을 찾다 마주친 어르신께 방향을 물었다. 초면인 사람에게 길을 물을 때면 먼저 낯빛을 살피게 된다.
어르신은 큰길을 빙 돌아가야 한다며 일러주었다. 돌아가는 우회로였으나 덕분에 마음의 길도 넓어졌다.
한강진 나루터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한남대교는 1970년 개통된 한강의 다섯 번째 다리다. 919미터 길이에 폭 51.2미터, 왕복 12차선의 위용은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을 잇는 관문이었다.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어낸 경부의 뜨거운 열기가 다리를 타고 흘러가 강남 개발의 시대를 열었다. 이제 다리는 빌딩 숲에 지친 사람들이 남산의 능선을 보며 숨을 고르고, 강북으로 돌아가는 길목이 되고 있다.
다리 초입, 부정한 기운을 막아내듯 해태상이 위엄 있게 서있고. 보행로 중간에는, 강 쪽으로 돌출된 전망 포인트가 나 있었다. 난간 위로 둥근 회전체가 터널처럼 씌어 있었다. 손바닥을 짚을 수도, 발을 디딜 수도 없게 설계된 안전장치였다. 매끄러운 곡선을 따라가며 둥근것들을 생각했다. 울퉁불퉁한 마음으로는 닿을 수 없는.
한남대교 난간 하단은 굵직한 철사로 엮어져 촘촘하고 상단은 유리막과 둥근 쇠구슬로 마감되어 보행감이 안정적이었다. 북단으로 향하는 길, 남산타워가 보였다. 하지만 구조물에 가려 타워 모습이 잘 잡히지 않았다. 나도 보이는 것의 윤곽에만 매달리느라, 안개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는지 자문해 보았다.
북단 끝 도로를 따라 걷다가 버스 정류장 앞에서 '수표터'를 발견했다. ‘세종 때 한강의 수위를 재기 위해 제천정 아래에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나란히 놓인 또 다른 표석은 옛 제천정 터다. ’조선시대 정자터로 한강가 절경의 하나, 달밤의 풍경이 아름다워 제천완월(濟川玩月)'이라 불렸다니 나루터의 풍류가 짐작된다.
서빙고를 향해 조금 더 걸어가다 구기자나무 몇 그루를 보았다. 쪼글쪼글해진 열매들이 새들을 위한 겨울 성찬처럼 가지마다 달려있었다. 한창일 땐 선홍색이었을 작은 열매들이 한파를 견디고 있다.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한강의 겨울은 시리다. 처음 걸어보는 한남동의 공기는 팽팽하고 차갑다. 하지만 옛 자취를 찾아가는 길에서 추위나 약간의 피로는 기쁨에 밀린다. 휴대폰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서빙고 터에 도착했다.
서빙고는 한겨울 한강의 두꺼운 얼음을 채취해 한여름까지 보관하며 나누던 곳이다. 1396년에 설치되어 동네 이름의 뿌리가 된 이곳에서 숨겨진 이야기를 만났다. 국가 제사용 얼음을 보관하던 동빙고와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던 서빙고 외에, 궐내에서 왕실 전용으로 쓰던 내빙고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얼음을 실어 나르던 빙고의 동네는 이제 전국으로 뻗어 나가는 기점이 되었다. 과거의 얼음이 귀한 나눔이었듯, 오늘날 이 다리 또한 사람과 세상을 잇는 길목이 되고 있다.
내게 한남동은 때로 먼 섬 같았다. 그러나 이번 다리 걷기를 하면서 간격은 좁혀졌고, 서빙고 터 뒤편의 남산타워는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었다. 깎여나간 자리가 둥글게 빚어질 때 타인을 위한 공간이 열리듯, 한남의 풍경 하나를 마음에 들여놓는다. 여름날의 수분은 다 빠져나갔으나, 가을 하늘 아래 눈부셨을 선홍색 열매는 지워지지 않는 빛깔로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서빙고역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탄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일상의 사람들, 나의 과거를 스쳐 갔거나 미래에 만날지도 모를 사람들이 또 지하철에 발을 들인다.
나를 떠난 사람들과 새롭게 만나질 사람들을 생각하며 건너온 다리를 바라다본다. 누군가에게 닿으려 했던 간절함이 저 견고한 다리를 세웠으리라.
강을 건너는 일이 타인의 마음에 교각 하나 놓는 일이라면,
잠잠하게 발을 옮기며 또 한 걸음 내딛어야겠다.
https://youtube.com/shorts/EEpwgVY1RG4?si=OBRIpZUq7SMHtg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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